[베니스의 요일 13] 버킷리스트 -1
베니스의 요일 13
버킷리스트 -1
베네치아 오는 '그' 다리 건너기
2018/10/09 Lunedì
평범한 월요일일 줄 알았습니다.
평범한 월요일답게, 아침 일찍 이탈리아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교실 안에 있으면 정각에 치는 종소리도 멀리서 들리고 창밖으로 배가 물을 가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여기 와서는 따로 공부를 안 했더니, 이탈리아어 기초공부 해온 짬이 점점 떨어져갑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제가 교실에서 이탈리아어 가장 잘하는 학생입니다. Va bene!
이날 친구들이 KFC에 가자고 해서, 친구들을 기다릴 겸 일기 정리도 할 겸 그간 오고싶었던 카페에 와 앉아보았습니다. 이탈리아에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앉을 자리가 있는 카페가 많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한두시간씩 앉아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여기서 한 사십분쯤 있었는데, 제가 무슨 터줏대감처럼 오래 앉아있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튼 이렇게 쿠키 한조각이랑 커피 하나 시켜서 3.3유로 냈습니다.
여기서 짤막한 이탈리아 카페 이야기! 이탈리아 카페는 앞서 말했듯 주로 바(bar)만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제가 체감하기로는 앉을 의자가 아예 없는 곳이 2/4, 간단한 의자가 있는 곳이 1/4, 본격적인 좌석이 있는 곳이 1/4쯤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좌석이 있는 카페는 좌석을 사용할 경우 세르비찌오(자릿세)를 1유로정도 받거나, 자릿세를 받지 않는 대신 커피값 자체가 비싸거나 합니다. 근데 비싸봤자 3.5유로입니다 여러분. 커피와 간단한 쿠키를 합쳐서요! 한국의 카페 가격을 생각하면, 서울 월세가 미쳐돌아가긴 하는 모양이라는 합리적 추측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KFC가 있는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했습니다. 친구로부터 '조금 늦는다 미안하다'는 전보를 받고, 괜히 서점에 한 번 들어와 봤습니다. 저와 수준이 맞는 책을 찾다가 이런 녀석들을 만나게 됐네요. 한국에서 가져온 책이나 보면 되지 또 책욕심이 나가지고 덜컥 구매할 뻔 했습니다. 이동네 물가가 전부 저렴해서 책도 쌀 줄 알았는데, 저 얇은 책 한권에 7유로가 넘더군요. 짜샤 귀여운 얼굴로 웃지말어.
우여와 곡절 끝에 치킨과 기타등등을 손에 넣었습니다! 사실 서울에 20년 넘게 살면서 KFC에는 5번을 채 안 가봤습니다. 햄버거 먹는 곳인 줄 알았는데, 여기 친구들은 후라이드치킨을 위해 여기에 오더라구요. 한국에는 많은 치킨 프랜차이즈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잘 오지 않는다고 친구들에게 말해주었더니 흥미로운 척들을 해주었습니다. 치킨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맥도날드든 KFC든, 이탈리아 패치가 되면 커피와 달달구리를 꼭 팝니다. 모두가 치킨과 콜라를 먹고 있는데 한구석에서 'ALL YOU NEED TO feel better is COFFEE'라고 외치고 있는 외로운 액자 하나. 일인 시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엄청 이탈리아스러운 광고를 보기도 했습니다. '뭐?! 햄버거 빵 대신 치킨을!?' 감성의 광고입니다. 저 손동작이 모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못 봤고, WHAT?! 스러운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이를테면 핸드폰 보다가 어이없는 신문기사를 봤을 때 손을 저렇게 모으더라구요. 갈매기가 빵을 훔쳐간다든가.
그리고 아주 뜬금없게도 베네치아 섬과 베네치아 육지를 잇는 '그' 다리를 건너기로 했습니다. 베네치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부터 품었던 저의 간절한 소망을 드디어 성취하네요. 친구 M과 M의 친구 C와 함께 KFC에서 먹은 칼로리를 불태우자는 명목을 만들어 여행 시작입니다. 그나저나 C랑은 꽤 자주 만나는 편인데도 좀처럼 친해지지를 못 하겠습니다. 저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인간이군이 한정되어있는 편인데, C는 아마 그 인간군에 속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리의 이름은 Ponte Della Liberta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자유의 다리이지요. 모든 다리가 본질적으로 물리적 소통의 자유를 상징한다는 점을 상기했을 때, '그' 다리 치고는 심심한 이름이라는 입장입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저희는 신나게 다리를 건넜습니다. 사실 예전에 '나 그 다리를 꼭 걸어서 건너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C는 '나도'라고 했고 M은 '난 빼줘'라고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리를 다 건넜을 때 쯤 M은 거의 빈사상태였습니다.
오종종 걸어가는 고양이 친구도 만났습니다. 청소년 고양이처럼 보이는 사이즈였습니다. 얘야 무럭무럭 자라렴.
서울의 고양이들에게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꼭 말해주곤 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고양이 해코지를 안할 것 같아서 그런 인사는 해주지 않았습니다.
반가운 메스트레!
이곳에서 반가운 4L버스를 만나서 탔습니다. 저는 되게 신났는데 M이 너무나도 괴로워해서 너무 재밌었습니다. 아니 제 말좀 들어보세요 그런 게 아니고요 괴로워하는데 그게 웃기더라고요. 아니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요.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 영어로 설명해야하니까 귀찮아서 생략합니다.
M한테 조금 미안하기도 해서 돌아오는 길에 젤라또를 하나 사먹였습니다. 젤라떼리아 사진만 찍어 올려서 독자들을 속이려는 거 아니냐구요? 아니 진짜로 사먹였습니다.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슈뢰딩거의 젤라또. 먹였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아 진짜 사줬다니까요.
다음 버킷리스트는 해질녘에 다리 걷기 시작해서 노을 지는 거 끝까지 보기랑, 자전거 타고 다리 건너기입니다. 스위스가서 패러글라이딩 타기도 할거지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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