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11]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베니스의 요일 11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2018/10/02-03
베네치아에 가을이 온 것은 사실 일주일도 더 됐습니다. 가을이 눈부시게 반짝거려서 사진도 많이 찍고 베네치아 가을에 대한 포스팅을 해야지, 생각한지도 꽤 됐습니다. 만... 그간 한 달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달을 준비하느라 저답지 않게 포스팅을 미루었군요. 그럴싸한 핑계를 갖다붙이자면,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사진과 글로 표현해봤자 현실의 1/10도 담지 못하는데 -하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 것입니다.
쥬데카의 운하에 노을이 지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일렁이는 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계 위에 붙박힌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물에 빠져버리면 모든 게 끝나는 주제에 인간이 얼마나 건방지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물도 혈액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면이 이어져 있어, 쥬데카의 운하에도 한강을 지나온 물이 섞여있겠지, 혹은 한강에도 베네치아를 흘렀던 물이 흐르고 있겠지 하는 생각.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다, 배가 고파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플랫메이트들의 '뱅쇼 끓이는 중이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뱅쇼와 함께 재미난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건빵은 별사탕하고 먹을 게 아니라 잼이나 치즈와 함께 먹어야한다는 식도락적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날은 PMS때문에 거의 9시간을 넘게 잔 날이었습니다. 수업에 가야했는데 몸뚱이가 너무 무거워서, 그간 미뤄왔던 바질 분갈이를 하려고 나왔습니다. (!) 뿌리를 살살 풀어줘야한다고 구글 세상의 한 바질전문가가 알려주었는데, 얽힌 뿌리를 풀자니 차라리 수업에 가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에 그냥 좀 더 큰 화분에 좀 더 많은 흙과 함께 옮겨넣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우측에 있는 작은 녀석에 들어있다가 한결 큰 화분으로 옮겨오니 제 마음이 다 뿌듯합니다. 원래 분갈이를 하고 나면 이삼일은 시들하다는데, 이 친구가 잘 견뎌내주면 좋겠습니다.
분갈이를 성황리에 마쳤으니, 창고에서 찾은 보드를 탈 시간입니다. 서울에서는 조그만 크루저보드만 타서, 이 친구는 스케이트보드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평범한 크루저보드인 것 같습니다. 묘기를 좀 배워볼까 해서 틱택인지 택견인지를 연마하려고 했는데 그냥 주행만 하라고 만든 놈이라 그런지 잘 안되더군요.
보드를 오랜만에 타니 허벅지랑 여기저기가 쑤셔서 공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벌써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 모자에 패딩까지 챙겨입고도 가져온 담요를 덮어야 했습니다.
누워서 공짜로 강아지구경도 하고 챙겨온 노트북으로 해야할 일도 하고 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마트에 들를까 하다가 그냥 왔는데, 비상용 빵이라도 챙겨올 걸 그랬습니다. 결국 또 배가 고파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신토불이 유기농 바질 잎을 몇 장 떼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말입니다.
플랫메이트 M양과 함께 간단한 저녁을 먹고, 후라이팬을 사러 나섰다가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결국 베네치아 섬에 다녀오기도 했네요. 베네치아에 도착하니 노을이 거의 사라진 후라 슬픈 마음도 들었지만, 베네치아는 언제라도 아름답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이번 시월에는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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