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12] 이탈리아 베네치아 한달 살고 느낀 점
베니스의 요일 12
이탈리아 베네치아 한달 살고 느낀 점 (feat. TMI)
2018/10/05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살게된지도 벌써 한달이 되었습니다. 9월 5일이 그야말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일이 지났다니 이거 사람마다 시계를 다르게 조정해야하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들 지경입니다.
1. 전반적인 생활: 생활비 측면에서
여기가 대단히 살기 편하다기 보다는, 서울에서는 사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렇게까지 숨쉬는 것마저 곤란하게 살아야 했는지? 물론 여기서는 모부님이 보내주시는 용돈만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삶이 더 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돈 버는 문제는 차치하고, 한달에 딱 백만원만 쓸 수 있다고 가정하면, 여기서의 삶이 오만배정도는 쾌적합니다. 우선 서울에서는 제가 지금 살고있는 더블룸 만한 크기의 방을 구하려면 보증금 1000에 월세 70이 듭니다. 이제 30만원으로 남은 한달을 살아야 합니다. 월 10만원 교통비, 3만원 통신비 나가면 17만원 남네요. 이 돈이면 라면도 못 먹겠습니다. 월세를 아끼고 아끼다보면 결국 조금의 빛도 들지 않는 단칸방으로 흘러들어갈텐데, 정신건강과 통장건강을 맞바꿔야하는 구조를 가진 서울입니다.
18유로(2만3천원)어치 장 본것.
여기서는 월세가 290유로,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맥시멈 40만원입니다. 보증금은 한달치 월세인 290유로였습니다. 한달 교통비 25유로(3만 3천원), 통신비 9유로(1만 1천원). 이제 50만원 정도 남았는데, 마트 물가가 아주 저렴하기 때문에 진짜 작정하고 식비 아끼면 일주일에 5만원으로도 충분히 잘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이거 돈 남아서 저축도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서울에서 살던 것처럼 여기서 살면 내년쯤엔 작은 집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비자를 바꾸기 위한 고생을 좀 해야겠지만요.
경제적인 부분만 얘기를 했지만, 대기오염이라든가 도시경관, 전반적인 스트레스요소들이 참 적습니다. 인간이야 뭐 어딜가나 이상하니까 삶의 질 평가 기준에 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 인종차별은 있다
(1) 친구들이랑 전자제품 가게에 가서 친구들은 사야될 거 사고 있고, 저는 아이폰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웬 틴에이저 남학생이 제 오른팔을 쿡 찌르고 도망가서 제 반응을 살펴보더라구요. 뻐큐하고 그 무리가 그 가게에서 나갈 때까지 그자리에 가만히 서서 째려봤습니다. 이틀 뒤에 죽으라고 동양의 신비한 점성술 저주를 걸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죽어있겠네요.
(2) 기본적으로 '백인이 우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딱히 동양인 차별이라기보단 안하무인격의 무차별 차별이지요. 한 친구가 베이징에서 유학했다길래, 동양 문화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 저보고 '너는 다른 한국 여자애들과 달리 화장을 하지 않아서, 처음 봤을 때 똑똑하다고 생각했어'라고 하더군요. 그럼 화장을 한 여자애들은 다 똑똑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물론 저도 매일같이 파티화장을 하지 않으면 집앞 슈퍼에도 못나가는 친구들이 몇명 있고 그친구들은 좀 너무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동양인이면서 화장을 안하고 다니는 너는 똑똑하구나~' 하고 제 면전에 대고 말하는 태도가 참 우습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놈들은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 했는지도 모르면서 입만 살았습니다.
3. 보수적임
이런 걸 지켜야되니까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거는 제 성격과 관련있는 건데요, 저는 야망있는 사람이고 항상 '내일은 뭐 하지?', '10년 뒤에는 뭘 할까?' 등등 항상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하기를 좋아하는데 여기는 좀 시골스러워서 가끔 '이거 너무 심심하게 살고있는 거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몇달 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인 프레이저 도허티(영국인)가 미국이 부럽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책을 읽을 때는 유럽도 충분히 선진국인데 왜 미국 타령이지? 했는데 와보니까 알겠네요. 여기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천재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건축물과 역사를 보존해야하니까요.
4. 강아지들이 엄청 착함
강아지들이 되게 착합니다. 목줄을 풀어놔도 강아지들이 다들 알아서 자기 할 일 합니다. 열심히 냄새 맡고 주인 잘 오고 있나 살펴보고 다시 냄새 맡고 마킹하고. 개들이 만나면 가끔 서로 죽일 듯이 짖는 녀석들도 있는데요, 사람한테는 짖지 않습니다. 지나가다보면 목줄 풀린 개가 웃는 얼굴로 혓바닥 내밀고 절 멀뚱 쳐다보다가 다시 냄새 맡고 마킹하고...
5. 영어가 정말 잘 안 통한다
베네치아 본섬에서는 간단한 영어 정도는 웬만하면 통합니다. 제가 살고있는 메스트레는 그냥 주거지역인데, 작은 가게에 가면 영어가 정말 통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손짓발짓 하거나, 아니면 플랫메이트의 도움을 받아 작문을 해가서 저의 요구사항을 이탈리아어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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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건 여기까지네요. 한달차 종합 소감은 <<여기에서 계속 살고싶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환학생이라는 이방인이 아니라, 여기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신분이 된다면 지금보다는 더 어렵겠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살아남은 저는 여기에서 웬만한 이탈리아인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게 이탈리아 여권을 주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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