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09] 잘먹고 잘 사는 법 석좌교수 강연
베니스의 요일 09
잘 먹고 잘 사는 법 석좌교수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 잘 먹고 잘 사는 법 강연을 하게 된 석좌교수 박요일이라고 합니다. 저는 연희동에서 약 1년간 자취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디 니가 라면 말고 다른 거 먹고살 수 있는지 보자>는 식의 장바구니 물가에도 불구하고, 연희동 사러가마트에서 약 8주동안 밀프랩을 한 사람입니다. 예 압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하하.
우선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있어 제일 중요한 요소는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좋은 아침! 혹은 굿 모닝! 혹은 본 조르노! 라는 인사가 자연스레 나와야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베네치아에 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입니다만, 제 독자분 모두가 베네치아에 거주하지는 않으시기에 참 설명하기가 난감하네요. 제가 사는 더블룸이 보증금 40만원에 월세 40만원인데, 보름에 한번 청소하시는 분이 오셔서 바닥이며 싱크대 화장실 싹 청소해주시고 그럽니다. 그리고 창문이 크게 있어서 아침마다 푸른 하늘을 보며 해를 바라보며 '본 조르노!'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40/40이요? 쩝.
잘 먹고 잘 살려면 아침밥은 필수입니다. 파스타를 끓이고 있는 냄비뚜껑에다가 마트출신 크루아상을 올려줍니다. 따땃하게 데워 먹어야 안에 들어있는 잼이 뜨뜻해지면서 제 기분이 다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룸메가 어쩐지 아시안 마켓에서 5유로 주고 사온 모카도 불에 올려주세요. 모카는 일반 마트보다 아시안 마켓이 더 싸더라고요. 브랜드 없는 친구 어쩌고 뭐 그런 이유일 거 같습니다.
이렇게 플레이팅 하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잘 먹고 잘 살기>에서 중요한 것은 '먹고'와 '살기' 보다도 '잘'이기 때문입니다. 먹고와 살기에 매몰되면 먹고살기 바빠져서 '잘'을 할수가 없게 됩니다. 저는 때로 못 먹더라도 '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야 먹고 살만해졌을 때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언이었으니까 필기하시는 것 잊지 마세요. 무튼 어제 마트에서 사온 이름모를 초코 쿠키도 곁들여주면 꽤 그럴듯한 이탈리아식 아침이 완성됩니다.
무슨 마켓에서 산 도시락에 샐러드랑 자두를 넣어가지고 수업에 갑니다. 공부할땐 하더라도 끼니를 걸러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2015년도 수능 총 7개 틀린 사람의 증언)
수업이 끝나면 치께띠와 스프리츠를 먹습니다. 저는 치께띠 하나 먹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친구들거에요. 물론 자주 먹는 건 아니고요 일주일에 한번입니다. 이곳에 많은 돈을 쓰면 식재료 쇼핑 예산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가끔 즐기는 취미생활로 남겨둡시다. 여러분이 한달에 이자 수익으로만 300만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면 아니라면 치께띠를 자제합시다. 그야말로 가랑비처럼 가계부 적시는 녀석입니다.
저녁으로는 (룸메들이 너무나 싫어했던) 양파 마늘 간장 설탕으로 양념한 닭가슴살과 파스타를 먹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이 매일 파스타를 먹는가에 대한 유의미한 실험 결과입니다: 한국인이 밥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문자 그대로 매일 먹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먹는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닌 그런. 맥주를 좋아하신다면 맥주를 마시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맥주는 저렴하기 때문에 매일 마셔도 됩니다. 그것이 점심과 저녁 모두에 해당하면 안되겠지만요.
같은 날은 아니지만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집에 놀러갔습니다. 같이 스위스에 가기로 해서 이것저것 예매하고 검색하고 어쩌고 했습니다. 베네치아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의 집이었습니다. 이런 집에 산다면 잘 못먹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5년 내로 이런 집에 살아야지 다짐했습니다. 물론 이런 집을 구매할만한 능력이 있다면 잘 못먹을리 없지만요.
그리고 이곳에서 드디어! 저의 닭요리 국물을 밥과 함께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 간장 설탕 국물을 먹으면 어찌나 밥생각이 나던지. 저는 파스타와 샐러드에 완벽 적응해서 한식 생각을 별로 안하는데요, 저 국물만은 예외입니다.
거의 한을 풀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군요. 밥이 조금 설익어서 아쉽긴 했지만 아쉬움은 0.1유로 정도였달까요? 경제적 관점으로 저의 아쉬움을 계량해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석좌교수라면 이정도 경제 상식정도는 가지고있어야 하겠지요.
2차로 라면도 끓여먹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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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든 레포트든 항상 마무리가 어렵지요? 그런 여러분을 위해서 제가 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냥 끝내시면 됩니다. Ciao!
copyright 2018. 박요일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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