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10] 베네치아 크루즈 반대 시위
베네치아 대형 크루즈 반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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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에 쥬데카 운하 앞에서 대형 크루즈 반대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런 걸 하는 지 몰랐는데, 여기가 카포스카리 자떼레 도서관 바로 앞이라 도서관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마침 베네치아의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는데, 우연히 시위에 와서 기사 사진도 많이 찍고 기삿거리도 얻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최근 베네치아를 여행하신 분이라면 이런 포스터를 본 적이 있을텐데요, 저도 보긴 많이 봤습니다만 뭔지는 몰랐는데 오늘 시위 홍보포스터였습니다. 해당 시위가 작년부터 꾸준히 열려온 걸로 알고있는데, 포스터 사진은 아마 작년에 찍은 사진인 거 같습니다.
본격적인 시위는 4시에 시작했는데, 3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준비를 하고있었습니다. 티셔츠도 팔고 깃발도 팔고 라이터도 팔고 열쇠고리도 팔길래, 저는 그중 제일 쓸모가 있는 라이터를 하나 샀습니다.
대형 크루즈가 베네치아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이 상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자면, 당장 베네치아에 있는 오래된 건물을 다 때려 부수고 20층 짜리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모순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은 장소의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이 모여온 것인데,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돈이 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기업화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주민들은 쫓겨나가고, 동네는 그 동네만의 색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뻐꾸기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한때 사랑했던 삼청동이 생각나는군요. 제가 다녔던 어린이집은 붕괴했고… 이제는 정말 서울에 추억할 것이 없습니다.
@@@ 젠트리피케이션 연구자에게 알립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한국어 번역으로 <뻐꾸기 현상>을 제안합니다. - 박요일로부터 @@
물의 도시에서는 시위도 물 위에서 펼쳐집니다. 사람들이 개인 보트를 끌고나왔습니다. 모터보트 뿐 아니라 개인 곤돌라도 많았습니다.
사진이 무슨 고아라폰으로 찍은 것처럼 나오긴 했지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이렇듯 튜브를 탄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을 본 뒤로 힙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렇게 막고 있으면 크루즈가 못 지나가는 건가?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유유히 지나가더라구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형 크루즈는 쥬데카 운하의 밑바닥을 쓸고 지나가면서 베네치아 운하 수위에 악영향을 미치고 대기를 오염시키며, 한꺼번에 많은 물을 밀고 지나감으로써 작은 배와 행인들에게 위험한 파도를 일으킨다고 하네요. 한편으로는 베네치아에 돈을 많이 벌어다주기도 하고요.
유유히 지나가는 Grandi Navi의 뒷모습. Grandi는 '크다'는 뜻이고 Navi는 보트의 복수형입니다. 그냥 보트는 Nave.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대형 크루즈가 지나가면 아무 생각없이 '우와!'하면서 크루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곤 했는데요. 보름쯤 전에는 크루즈한테 손을 흔드니까 어떤 할저씨가 와서 '노!'라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수상버스 역 안에서 젤라또를 먹는 중이었는데 '여기서 젤라또를 먹으면 안된다는 뜻인가?'라고 생각했는데ㅋㅋㅋㅋ 기사 작성을 위해 리서치도 하고 시위에 직접 나와보기도 하니까, 그때 그 할저씨가 했던 '노'가 그 크루즈는 나쁘다는 뜻의 '노'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니 할저씨 '크루즈 노!'라고 해주시지요. 깨닫는데 너무 오래걸렸잖아요. 이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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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에서 역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며 그 정치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이번 시위에서는 대립하는 정치집단은 크루즈 사업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 vs 크루즈 사업으로 이익을 침해당하는 사람들일텐데요.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때, 전자는 덩치 큰 나쁜 어떤 기업이고 후자는 작고 약하지만 함께 힘을 모아 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인간으로서 후자를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저도 거시적으로 보자면 크루즈 사업으로 이익을 침해당하는 쪽에 속해있으니 (주민은 아니지만 베네치아에 거주 중이니까) 완벽한 제삼자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서울로 돌아가면 또 사업을 하게 될텐데, 어떤 기업가가 되어야할지 묵묵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는 말을 빙빙빙 돌려한 것입니다. 죽림칠현병이 완치되었으니 이 인간계에서 정말 끝내주게 잘 살고싶습니다.
크루즈 반대시위 얘기에서 결국 제 얘기로 글을 마치게 되었네요. 저도 참 별 수 없는 자기중심적 인간입니다. 보통의 천재들이 다 이런 식이니까 여러분도 주변의 천재들과 친해지려면 저의 글들을 정독하시는 건 어떨까요? :)
-그리고 저의 천재적인 통찰력으로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재랑은 친구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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