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장바구니 03] 시월 첫주 먹고사는 얘기
이탈리아 장바구니 03 :: 시월 첫주 먹고사는 얘기
30/09/10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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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베네치아에서 교환학생 생활 중인 박요일입니다.
원래는 밀프랩 시리즈를 연재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밀프랩을 안 하게 되어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밀프렙을 안 하는 이유는 도시락통이 하나밖에 없다는 점도 크게 일조하고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매일 신선하게 이탈리아 식으로 요리해서 먹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주는 사실 옥토버 페스트 가는 주간이라, 주말동안은 집을 떠나있을 거라서 식재료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집에서는 조금 멀지만 훨씬 규모가 큰 마트에 갔더니 신이나서 이것저것 많이 사오게 되었습니다.
나선형 모양으로 아침밥용 크루아상, 바질, 벨리니, 로제와인, 샌드위치 빵, 섬유유연제, 토르틸리니, 니베아 크림, 화장솜, 버터, 마늘이랑 파슬리가 어떻게 되어있는 어떤 것, 새우, 에스프레소 컵, 라임, 슬라이스 치즈, 햄버거 패티, 닭다리 일습입니다.
옛날부터 엄청 먹어보고 싶었던 벨리니와, 함께 마트 간 플랫메이트가 추천해준 로제와인입니다. 벨리니는 엄청 달짝지근한 와인의 일종인데, 복숭아 맛이 약간 나고 살짝 점성이 있어서 (쿨피스같은 느낌) 맛있습니다. 그치만 조그마한 주제에 4유로나 하기 때문에 다시 먹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로제 와인은... 저한테 작은 와인 오프너가 있긴 한데, 너무 작은 녀석이라 그런지 못 열어서 못 먹고 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저는 울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 순간에 제가 울 이유는 없겠지요.
근데 외로울 때 안 우는 건 그렇다 쳐도 슬플 때 안 울면 정신건강에 해로울 거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캔디병 걸린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슬플 때는 웁시다.
오늘도 잊지않고 영수증을 찍어올립니다. 제 이탈리아어가 매우 짧은 관계로 영수증 해석본을 올리지는 못하나, 토탈 34.07유로였다는 콘크리트 팩트만큼은 자랑스레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장바구니 물가가 한국보다 30퍼센트 저렴하다는 경제적 팩트도 팩트지만, 이 모든 상품이 메이드인 이탈리아라는 점에서 더 저렴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서야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니까 저렴하게 산다고 해도, 아예 똑같은 제품을 서울에서 구매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신세계 백화점 수입상품 코너? -여기 사는 동안 많이 먹고 많이 놀아야겠습니다.
냉장고 정리를 마친 후, 금방 사온 친구들과 힘을 합쳐 점심을 만들어 먹기로 했습니다. 이 동네 친구들은 양파와 마늘을 많이 안 먹던데 저는 이 동네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양파와 마늘을 많이 먹습니다. misto prezzemolo e aglio 저 친구는 프레쩨몰로와 마늘 믹스라는 뜻입니다. 알리오가 이탈리아어로 마늘이에요. 이탈리아어 발음으로는 '알료'에 가깝습니다.
괜히 새우도 넣어보았습니다.
중간에 과정이 많이 생략되었죠? 저도 압니다만 삼각대가 없어서 스토브 쪽은 찍기가 어려워서 그랬습니다. 여기서 영상을 좀 찍어볼까 하여 삼각대를 아마존에서 구매하려고 했는데, 카드랑 주소 우편번호 등등은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저보고 자꾸 '진짜 이름을 적으시오'라고 해서 결국 구매에 실패했습니다. 저기요 제 이름은 그냥 평범한 아시아의 이름일 뿐입니다.
무튼 본디 소유하고 있었던 토마토소스를 첨가함으로써 토마토파스타를 완성시킨 모습입니다.
새로 사온 에스프레소 컵에 괜히 벨리니를 담아 마셔봤습니다. 무라노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투명한 에스프레소 컵을 마트에서 발견한 것은 참으로 귀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역시나 푹 자고 일어난 닭요리를 해먹을 것입니다. 한번 재워놓으면 일주일 내내 맛좋은 닭요리를 먹을 수 있으며 맥주 안주로도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잡내를 뺴기 위해서 물에만 담가놓아도 상관 없지만, 라임을 사왔기 때문에 괜히 라임도 함꼐 넣어 멋을 내보았습니다.
레시피는 너무나 초간단합니다. 닭을 대충 씻고 찬물에 삼십분 정도 담궈뒀다가, 물기를 털고 간장 많이 설탕 많이 넣고 양파랑 마늘 사이사이에 끼워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하룻밤 재워두면 됩니다. 참 쉽죠? 어려운 요리 좋아하시는 분들은 밤새 냉장고 앞에서 자장가를 불러주세요. 소금이나 후추는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됩니다.
파스타를 다 먹고 룸메이트랑 도서관에 가기로 해서, 있던 재료와 사온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 것입니다. 신선한 바질을 사오긴 했는데, 만난지 하루도 안 됐는데 잎을 떼기가 좀 뭐해서 그냥 집에 있던 바질페스토를 사용했습니다.
바질페스토를 바르고 살라미를 얹은 뒤 치즈만 올려주면 완성입니다. 이렇게 두 개 싸가면 저녁 한끼로 뚝딱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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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0/18 TUE
화분을 갈아줘야 하는데 월요일에 비가 와서 아직까지 화분을 못 갈아줬습니다. 손바닥 만한 방에서 일곱식구가 아등바등 살았다는 한국 근대문학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만큼 어서 큰 집으로 옮겨줘야겠습니다. 흙 없이도 물꽂이를 해주면 된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본 바 있는데, 저는 이런 쪽으로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흙에다가 키울 것입니다. 모자란 흙은 근처 공원에서 몰래 훔쳐올 생각입니다.
아차차 이친구는 1.99유로에 사온 녀석입니다. 역시 신토불이네요.
대충 씻고 대충 찢어서 치즈 위에 올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살라미로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에 바질에게도 낯선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토불이 정신을 바탕으로 완성된 초간단 샌드위치는 저의 하나뿐인 도시락 통에 넣어가서 수업 쉬는 시간에 먹을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식비를 아끼려면 정말 최소한으로 아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라면, 햇반 이런 거 아니고 정말 신토불이 음식 먹을 수 있습니다. 파스타 면이랑 토마토 소스 한 통씩 사면 일주일 이상은 먹는데, 파스타 한통에 0.5유로 토마토 소스 1.5유로기 때문에 사실상 라면보다 더 저렴합니다. 서울이 저를 너무 강인하게 키워주었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삶은 무슨 은퇴한 자의 여유로운 삶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토불이 만세 \(^0^)/
copyright 2018. 박요일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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