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프렙 02] 半東半西 - 반은 서양이요, 반은 동양이라
이탈리아 밀프렙 02
半東半西 - 반은 서양이요, 반은 동양이라
2018/09/24~2018/09/30
안녕하세요! 이탈리아에서도 밀프렙의 전통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박요일입니다.
대체 무슨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제 이전 블로그 오늘은 박요일의 '밀프렙하는 요일'카테고리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탤릭체 글씨에 링크 걸어놓았으니 참고하세요. 저의 훈민정음을 농간하는 문장과 성실함 어쩌고 저쩌고 (후략)
사실 밀프렙이라 함은 도시락 여러개를 주루룩 꺼내놓고, 거기에 식단에 맞춰 예쁘게 음식을 담아둬서 어쩌고 하는 장면을 많이 떠올리실 텐데요. 사실 그게 밀프렙의 정의에 맞긴 합니다. 보통 일주일 치의 점심 혹은 저녁을 미리 준비해두는 작업이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모든 분야의 아웃사이더, 시키는 대로 하긴 하지만 뭇 선생님들로 하여금 '아 쟤는 좀만 더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불량모범생 아니겠습니까.
저는 일주일치의 식량만 사둘 뿐 락앤락 일곱개를 주루룩 준비하지 않습니다. 마트 가서 대충 이번 주 먹을 거리 정리해서 (보통 세일하는 거 사옴) 대충 이것저것 집어옵니다. 식단은 따로 정하지 않고, 사놓고 정리해둔 음식들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날그날 점심 도시락으로 변신시킵니다. (사실 도시락통이 하나밖에 없음)
오늘따라 서론이 길었네요. 베네치아에 드디어 가을이 와서 신이 나서 그랬습니다.
원래 월요일 저녁에 장을 봐오는데, 시간표상 월요일 저녁에 수업이 너무 늦게 끝나서 이번 학기는 일요일 저녁에 장을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여기 온 뒤로는 꼬박꼬박 가계부를 쓰는데, 이번 몇 주동안 충격적으로 많은 돈을 소비한 것을 발견, 이번주는 절대 외식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것저것 많이 사왔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집어왔는데 오늘(25일) 환율 기준으로 약 23,000원정도 나왔습니다.
아침
크루아상 6개 - 1,19 유로
우유 - 1,05 유로
자두 5개 - 1,65 유로
점심
리코타 치즈 - 0,79 유로
샐러드 1봉 - 1,29 유로
저녁
닭날개 6개 들은 거 - 3,06 유로
페로니 맥주 3병 - 1,99 유로
초콜렛 크림 간식 - 2,69 유로
기타
건강 설탕 - 2,20 유로
소금 - 0,59 유로
자스민 향초 - 1,39 유로
환율 계산은 귀찮아서 생략한 점 죄송하는 척 해보겠습니다. 마트 물가가 전반적으로 서울보다 30퍼센트가량 저렴합니다. 평균 30퍼센트고 품목에 따라 거의 반절 차이나기도 합니다. 특히 과채류가 정말정말 저렴합니다. 저 샐러드 1봉짜리는 일주일 내내 먹어도 다 못 먹을 때가 많을 만큼 양이 정말 많습니다. 한국에서 <가볍게 샐러드나 먹어볼까>하면 거의 백반 한끼에 맞먹는 가격을 지불해야했던 눈물의 역사가 잠시간 떠오르네요.
일요일에는 장만 봐오고 본격 조리를 하진 않았습니다. 연희동에 살 때 매주 월요일 저녁에 밀프렙을 준비했던 관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뉴턴 좀 하는데?
월요일 저녁, 양파를 다 먹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엄청 큰 양파를 0,55유로 주고 사왔습니다. 이탈리아 마트에서는 과채류를 담는 봉투에도 돈을 받습니다. 0.01유로. 맨 첫번째 사진 6시 방향에 자두를 감싸고 있는 그 비닐이 그 비닐입니다. 해서 그냥 양파를 한 손에 들고 집으로 뚤레뚤레 돌아왔습니다.
아뭏든 일요일에 사온 닭날개로 저의 최애 레시피인 간장설탕마늘양파속에서1박한닭요리 를 만들 것입니다.
이동네에는 마늘을 다져먹는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마늘를 제 손으로 직접 까고 그걸 또 직접 다져보는 건 처음이네요. 온 집안에 마늘냄새가 퍼지는데 저 빼고 모든 플랫메이트가 그야말로 극혐하더라구요. 얘들아 너네 무섭게 왜 그래 좋기만 한데.. 두유 노 갈릭?
거의 짓무른 마늘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칼이 너무 노후했더군요. 그냥 저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백스테이에서 설탕 간장 소금이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네요. 간장은 이동네 마트에서 산건데, 찌끄만게 5천원이더라구요. 이것이 비교우위라는 것일까요?
간장 많이, 설탕 많이, 마늘 많이 넣어주면 완성입니다. 참 쉽죠? 이따가 닭 물기 빼고 해당 소스 수여식을 할 예정입니다.
사실 닭날개 요리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먹을 저녁밥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구석에서는 로제파스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프로는 다르네요. 무튼 원래 토마토 파스타 해먹으려고 했는데, 저번에 까르보나라 해먹고 남은 크림이 있길래 그냥 한 번 넣어봤습니다.
요새 너무 고기를 안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영양공학적 의심이 들어, 소스를 입기 전 산뜻한 닭날개 하나를 급히 섭외, 그리스인 룸메 E양이 알려준 레시피대로 닭을 조리해봅니다. 그리스 식 조리법이냐고 물으니 딱히 그건 아니지만 맛있는 조리법이라고 해서 뚝딱 배웠습니다. 애독자 선물로 해당 레시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해당 레시피는 닭다리 1개, 혹은 닭날개 1개 조리법입니다.
1. 신선한 기름을 팬에 두른다.
2. 닭 다리, 혹은 날개를 넣고 뚜껑을 덮는다.
3. 앞뒤좌우 골고루 익혀준다.
4. 90퍼센트 이상 익었으면, 아주 약간의 물과 (종이컵 1/3컵정도?) 소금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5. 다 익을 때 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6. 그릇에 넣고 맛있게 먹는다.
이게 완성되면 아래 국물이 남거든요? 그것까지 그릇에 담아서 드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사실 로제파스타가 한참 전에 완성되어있었는데, 닭날개를 조리하느라 파스타를 식혀버렸습니다. 미안해 파스타야.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못하지만 반성은 할게. 근데 너가 체온 식는거 힘줘서 참으면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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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쩡 화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젯밤 냉장고(refrigerater)에서 하룻 밤을 잔(marinate) 닭날개(The Wing of the Chicken) 와 그의 쫄개들의 모습입니다. 푹 잘 잤는 지 염색이 잘 됐네요.
음식을 양념에 재우는 게 영어로 Marinate라고 M양이 알려줬는데, 이게 왜 이렇게 외우기 힘든지 '야 그거 냉장고에 let it stay 하는 거 뭐였지?'를 과장 없이 10번은 물어봤네요. M양이 웬만해서 짜증을 안 내는데 10번째 물어봤을 때는 짜증을 참는 게 보여서 왠지 몰래 웃어버렸습니다. 뭐랄까... 내가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이런 단어 하나 외우는 데는 아직 미숙하구나... 짜식...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뭐야 공감능력 어디갔어? 한국에 두고왔습니다.
닭날개는 저녁 찬거리로 준비하는 거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침도 먹어야하기에 모카도 같이 준비했습니다.
半東半西
반은 서양이요, 반은 동양이라.
저거 끓이는 데 저를 제외한 모든 플랫메이트들이 극혐하는 양파와 마늘 냄새가 온 주방을 뒤덮어서,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좋기만 한데 왜 그러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같이 살아야하니까 한 켠에는 화이트 자스민 향초를 켜두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정말 맛있는 저의 황금레시피 닭날개 요리가 완성되어가는 모습입니다. 한 숫가락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어서, 역시 프로는 프로다는 생각이 또 한번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베네치아에 하루아침에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닭날개를 식히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군요.
이따 수업 끝나고 보자 너... 잘 있어라... tak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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