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05] 이탈리아 교환학생 주말 일상
이탈리아 교환학생 주말 일상
2018.09.17 sun
베네치아에서 생활을 꾸려나간지도 벌써 2주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위의 사진은 일요일에 찍은 건 아니지만 그냥 예뻐서 올려보았습니다. 서울에서는 하늘이 맑지 않으면 예쁘다 소리가 안나왔는데, 여기는 하늘이 맑든 비가 오든 구름이 끼든 상관 없이 모든 순간이 아름답습니다. 제가 혐오해 마지않는 자동차 엔진소리도 나지 않구요. 물론 배도 엔진소리를 요란하게 내긴 하지만, 제 고막에게 1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울려대진 않습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제가 얼리버드인게 아닙니까. 8시에 알람을 맞춰놓으면 주로 7시 53분에 눈이 떠지는 마법같은 삶을 살고 있네요. 아침에 식탁에 앉아서 영어공부하면서 먹으려고 뻰네 파스타 해먹었습니다.
아침을 다 먹고 날씨가 너무 좋길래 오일파스텔을 들고 근처 공원으로 나섰습니다. 제가 살고있는 지역은 베네치아 본섬에서 20분정도 떨어진 메스트레라는 주거지역입니다. 곳곳에 작은 공원이 아주 많고, 이렇게 본격적으로 큰 공원도 군데군데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뭘 하려면 카페에 가야했는데 여기서는 그냥 공원에 슥 나옵니다. 겨울이 오면 카페를 찾아들어가야겠지만, 오늘의 요일은 오늘을 즐깁니다. 여러분 인생은 짧고 오늘은 깁니다. 오늘을 즐깁시다.
무튼 그림을 끼작대고 있는데 아기천사 두명하고 아빠가 와서 제게 스몰토크 요청을 했습니다. 미리 익혀둔 non parlo Italiano (이탈리아어를 못합니다) 문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기천사들이 그림에 관심이 있는 거 같아서, 영어로 같이 그림을 그리겠냐고 종이와 파스텔을 나누어주려 했는데, 쑥쓰러운지 저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귀여운 오리병아리들도 무료로 구경했습니다. 이 작은 호수에 거북이도 살고 오리도 살고 갈매기도 놀러오고 비둘기도 놀러오고 합니다. 호수 안쪽으로는 토끼와 공작과 닭을 기르는 작은 농장도 있던데, 대나무 펜스에 가려져서 호수 건너에서만 멀찍이 구경했습니다.
플랫메이트 M과 도서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써야할 글이 있어서 그 일을 하고, M은 전공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M이 알려준 지름길에서 만난 NOT CLIMATE CHANGE. 우리는 베네치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구온난화를 멈춰야 합니다. 환경학자들은 이미 늦었다고 하지만... 인간은 왜 이모양일까요. 다음 생에는 신으로 태어나서 인류를 책임지고 성불시키겠습니다. 이번 지구는 신도 인간도 엉망이네요.
지구가 오늘 멸망한다 하면 저는 자떼레 도서관에서 눈물을 훔친 뒤 해질무렵에 자떼레 역 근처에서 베네치아의 일몰을 감상한 뒤, 지구가 멸망하기 1분 전에 베네치아 물에 빠져 죽겠습니다. 무튼 이 사진이 자떼레 도서관에서 찍은 건데요, 뒷문이 바로 베네치아 운하와 연결됩니다. 비상용 통로라 평소에는 이용할 수 없긴 한데, 뭐 어떻습니까. 눈물나게 아름다운걸요.
M양이 베네치아에서 제일 맛있는 피자집에 데려가주었습니다. 저는 피자의 이데아를 만난 것입니다. 한국의 모든 피자광에게 전합니다. 이탈리아의 피자를 먹기 전에는 본인을 '피자광'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당신이 먹은 피자 중 도우가 쫀득쫀득하고 짭짤한 피자가 있었습니까? 만약 당신의 대답이 아니오라면 차라리 치킨광이 되는 걸 추천합니다.
이탈리아답지 않게 밤11시까지 운영하는 집앞 젤라또 가게도 들렀습니다. 한국도 그렇고 이탈리아도 그렇고 어디 놀러가자고 하면 꼭 맛있는 걸 먹지 않습니까? 근데 여기서 먹는 맛있는 음식이 더 맛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탈리아에서 노는 게 더 재밌습니다.
진짜로 서울로 돌아가고싶지 않습니다만, 서울로 돌아가게 되면 이곳에서 정식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지위와 경제력을 갖춘 후에 다시 나올 것입니다. 두고보십시오. 정식으로 이곳에 돌아왔을 때는, 하루에 젤라또 두가지 맛 콘 두 개씩 먹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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