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02] 베네치아 사진을 믿지 마세요 (+ 베니스 9월날씨)
[베니스의 요일 02]
베네치아 사진을 믿지 마세요
2018/09/06
오늘은 무척이나 일찍 일어났습니다.
전날 비행에서 한 숨도 못잔 점, 새벽 1시에 잠든 점을 고려할 때 아침 7시 기상은 정말 놀라운 성과입니다. 건물 구조상 1.5층이자 주소상 1층에 거주중인데, 누군가가 마당을 쓰는 소리가 들려서 깼습니다. 햇볕이 기분좋게 들어오.. 진 않았지만, 깨끗한 햇살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닫고 이어폰을 끼고 다시 잠에 들었을텐데요.
마당에 이름모를 꽃이 피었습니다. 이 골목에 저 꽃나무가 아주 많던데 이름을 어떻게 알아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짧은 단어로는 소통이 가능한데 서로 문장을 주고받지는 못합니다.
여기서는 대부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삽니다.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커다란 창가 앞의 책상에서 한국어를 끄적이는 중입니다.
전기주전자와 전자레인지는 없지만, 스토브와 오븐이 있는 가정집 주방입니다. 아침에 밀크티가 마시고 싶어서 작은 커피용품에 물을 끓여봅니다. 불 붙이는 것도 참 앤틱한데요. 가스를 켜고 거기에 라이터를 갖다대야하는 형태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지만 극한의 적응력을 가진 요일씨는 여기에도 반나절만에 금방 익숙해지고야 맙니다.
뭐랄까요... 이곳에서는 이런 풍경이 아주 평범해서 사진찍을 거리도 안됩니다. 그치만 갓 서울에서 상경한 저는 이 모습도 예쁘게 느껴져서 한 장 찍어봤습니다. 아침 7시에 밀크티 물을 끓이며 신선한 바람을 어쩌구.
밀크티를 마시며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마당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나길래 산책을 하기로 결심, 바깥을 나섰다가 두 가지 사고를 치는데요. 하나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고 하나는 현관문을 바깥에서 잠궈버려서 룸메가 나오지도 못하고 제가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출했다는 점? 길을 잃었던 것은 제 안에 내장된 동물적 감각으로 해결하였으나 현관 걸어잠군 것은 집주인님이 오실 때까지 해결을 못했습니다. 다행히 집주인이 아침에 오기로 약속되어있던 날이라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집주인과 어찌어찌 계약서 작성을 완료하고, 책상 하나를 더 요구한 뒤 어찌어찌 E양과 베네치아 본섬으로 가게되었습니다. 옷장은 참 넉넉한데 책상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쩌다보니 제가 책상을 차지해버린 상황입니다. 빨리 책상 하나 더 주세요!
이거는 집 열쇠꾸러미 입니다. 대문 열쇠, 현관 열쇠, 그리고 방 열쇠까지 도합 3개의 열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엄청 이탈리아스러운 열쇠라서 너무 마음에 듭니다. 저 열쇠 짤랑이는 소리만 들으면 괜히 설레는 그런 게 있습니다. 저는 사소한 변화를 좋아하니까요.
아침에 울던 고양이를 드디어 만났습니다. 2층 창문에 앉아있더라구요. 그 근처 사는 모양입니다. 천사같은 애기가 발코니에서 놀고 있어서 귀여운 아기와 고양이를 동시에 구경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입고 돌아다녔는데 참으로 더웠습니다. 베네치아 9월 날씨는 still summer입니다. 팔을 끝까지 걷어붙이고도 더워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다만 해가 떨어지면 꽤 선선한 바람이 부니까 반팔을 입으시고 가디건을 하나 챙기세요. 그리고 편한 신발 신으시는 것은 무조건 필수입니다! 저는 편한 러닝화를 신고도 하루종일 빨빨 돌아다녔더니 발이 퉁퉁 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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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베네치아 본섬입니다. 저는 현재 휴대폰 개통을 못 해서 데이터 사용이 불가하여, E양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서 다녀온 것이라 버스 노선 및 기타 유용한 교통정보를 드릴 수 없는 점 양해바랍니다. 조만간 도서관장 박요일답게 정확한 정보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번엔 그냥 사진만 봐주세요 ㅎ
사진이 베네치아의 0.1퍼센트도 담지 못합니다. 저는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촬영 포기했습니다. 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시뮬라크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복제조차 안되는 그런 아름다움이랄까요.
별 목적 없이 돌아다니다가 이런 광장이 있어서, 근처에서 샀던 라자냐를 여기에 있는 정체불명의 동상 아래서 먹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이 너무 '평범한 일상'이라 호들갑을 떨기 좀 머쓱하달까요.
그리고 재밌었던 것은 생각보다 문구점과 서점이 곳곳에 많이 있단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공책이 있으면 사서 일기장으로 쓰려고 벼르고 있는데, 공책은 또 많이 팔지를 않습니다.
베네치아 풍경의 정확히 0.000001퍼센트를 사진으로 남겨왔습니다. 여러분 그냥 여기는 와서 보세요. 사진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다큐멘터리도 보고 구글에서 사진도 찾아보고 했었는데요, 그 어디에도 실물을 제대로 담아낸 매체는 없습니다.
섬이 걸어만 다니기엔 꽤 큰데요, 이 섬 전체가 무슨 테마파크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이 없습니다.
지구에 또 이런 곳이 있을까?
신이 있다면 그 신이 가끔 지구 놀러오고싶을 때 올 목적으로 만든 도시같습니다.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려 한다면, 베네치아 데려와서 와인이랑 라자냐 사먹이면서 회유하면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원래 오늘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에 가려고 했는데요, E양도 저도 너무 힘들고 다리아파서 그냥 집으로 돌아와서 쉬기로 했습니다. 사실 잠깐 쉬고 다시 나가려고 한 거였는데 제가 낮잠을 3시간이나 자버리는 바람에 가지 못했군요. 내일이나 모레는 정말 가야겠습니다.
무튼 일어나서 마트 가서 저녁거리좀 사올까 했더니 밤 8신데 벌써 문을 닫았더라구요! 구글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레스토랑들은 너무 멀었습니다.
어쩌지? 그냥 저쪽 골목으로 한 번 가보자, 해서 마트 반대편 골목으로 갔더니 피자집이며 젤라또 집, 약국, 펍 등등 상점 밀집지역이 있었습니다. 맥주 한 병이랑 피자 두 조각을 사서 돌아왔습니다. 제가 산 거는 아티쵸크와 버섯과 햄이 올라간 정체불명의 피자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우측에 있는 녀석입니다.
베네치아 물가가 많이 비싸다고 들었는데, 본섬은 아니라 그런지 그리 비싸다는 느낌은 아직 못느꼈습니다. 제가 산 피자는 한 조각에 6유로였는데, 양이 많아서 반 쪽은 내일 아침으로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뒀습니다. 좌측에 있는 피자는 E양이 고른 마르게리따 피자(아마도)인데 저거는 훨씬 저렴했습니다. 맥주도 한 병에 3.5유로. 이 동네 물가는 서울이랑 비슷한 거 같습니다. 장바구니 물가는 좀 더 싼 편이라고 들었는데 아직 마트에 한 번도 못 가봐서 비교는 아직입니다.
내일은 웰컴데이가 있는 날입니다! 이제 학교 설명도 좀 듣고 수업도 듣게 되겠지요... 세상에나 수업을 들어야 한다니! 저는 마냥 놀러온것만 같은 기분인데요. 내일도 부지런히 빨빨거리며 돌아다녀야겠습니다. 별 이유도 없이 아침이 기다려지기는 되게 오랜만이네요.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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