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 전 부지런히 다녀온 남산 산책 일지
21.04.11 일요일
한남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동네 어디에서나 남산타워가 보인다. 남산 공원이 집 앞 공원인 거나 다름없다. 해서, 비가 오는 월요일이 찾아오기 전, 분홍빛이 아직 남아있는 남산에 부지런히 다녀왔다.
남산 공원 아래 어딘가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챙겨온 책을 몇 장 읽고, 남산 타워에 오르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별 계획 없었다는 뜻) 대충 남산도서관에서 내려서 걸어올라가면 되겠지? 정도의 계획은 있었다.
402번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남산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실 남산도서관에 굳이 들어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버스 앞자리에 앉은 점잖아보이는 아저씨가 원서를 읽고 있었는데, 남산도서관에서 내리더니 남산도서관 안으로 바지런히 걸어들어가는 모습을 봐버린 것이다. 괜히 따라 들어가고싶은 맘에 도서관에 들어갔다.
고등학생 때 교외 활동으로 운영하던 문학 수업을 들으러 남산도서관에 매주(였나 격주였나) 온 적이 있었다. 남산도서관이 자리를 옮긴 건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하나도 닮지 않아서 낯설기도 했다.
그 앞에 핀 라일락 아래서 냄새를 한차례 음미하고, 1층에서 진행 중인 한 작가의 개인전도 구경했다.
도서관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의 소음도 소란처럼 느껴지는 공간에서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은 그 불안함을 가중시켜주는 '문화누리실', '창의나래실', '더불어실'처럼 좀처럼 그 목적을 유추할 수 없는 네이밍이었다. 다들 자연스레 '문화누리실'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는데, 혼자 두리번 거리기도 누굴 붙잡고 물어보기도 뻘쭘한 것이다. 도서관은 좀 과할 정도로 직관적인게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과장해서 예시를 들자면... 인문사회과학실(대출가능), 책도조금있고앉아서자유롭게책읽으며쉴수있는실(대출불가능) (개인적으로 이게 문화누리실 보다 낫지 않나 싶다) 등... (-나름 문헌정보학과 졸업생으로부터)
남산도서관 2층의 야외 쉼터에 앉아서 보이는 풍경. 여기 한 세시간은 앉아서 광합성하며 뒹굴고 싶었는데, 갈길이 멀어서 잠시 앉아있다가 떠났다. 커피 마시러 가야되걸랑.. 여기서 어디 카페 갈지 서치해봤다. 가까운 카페 중 '마뫼'라는 카페를 선택했고, 길을 나섰다.
은쑥이라는 이름의 식물 발견! 이름이 은숙인 친구가 생기면 이 식물을 선물해주고 싶다.
+ 떠나야지! 했는데 괜시리 책도 한 권 빌리고 싶어서 인문사회과학실에 들어갔다.
무슨 책을 읽을 진 모르겠구 도서관이 주는 세렌디피티를 즐기고싶다고 생각하며 서가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책등을 살폈다. 문득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발견했다. 이틀 전 술자리에서 70퍼센트 정도 취하고 30퍼센트 정도만 남았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무슨 얘기를 했던 건진 모르겠는데 저 책 이름이 분명히 거론됐었다. 해서 이 책을 빌렸고, 5/2일이 지나기 전에는 도서관에 반드시 또 와야해
카페 가는 길... 정말 잘생긴 고양이가 광합성 중이었다. 아이라인이 그려진 것처럼 눈 주변에만 얼룩이 있었다. 이렇게 잘생긴 고양이는 또 처음보는 거 아닌가 싶었다.
예쁜 꽃을 키우고, 디자인해서 심고, 봄을 기다리고... 화단 뒤에서 무슨 일이 펼쳐졌을지를 생각하면 너무 멋지다. 누군가는 그냥 꽃이 꽃이지 뭐 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가장 예쁜 꽃들을 가장 잘 어울리도록 심고 키우고 피운다는 것 ... 멋져...
부영 사랑으로 가 보이는 곳
사랑으로~
달콤한 커플들도 많이 봤다
여기가 내가 오고자했던 카페 마뫼. 다행히 바깥쪽 테라스에 자리가 있었다.
아인슈페너를 시켰고, 맛은 그냥 그랬다. 테라스에 앉아있으면 케이블카가 오가는 걸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멋진 카페에서는 재즈나 클래식이나 블루스처럼 좀 chill한 노래가 나왔으면 싶은데 (유튜브 chill mixset 같은거) 빌보드 탑 백같은 팝송이 나와서 죄금 아쉽긴 했다.
요새 읽고있는 책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싶었어>
요거는 정말정말 재밌게 읽고 있어서 나중에 책 리뷰도 한 편 쓰려고 한다. 해야할 말이 많으니 여기서는 설명 생략
별장 이라고 적힌 아파트 로 추정되는 건물
삼순이 계단도 봤다. 여기서 애고 어른이고 전부 가위바위보 하면서 올라가는 게 귀여웠다.
본격적으로 남산 트래킹을 시작합니다~~ 와~~~
라일락이 보이면 몰래 마스크를 내리고 향기를 즐기세요.
특이한 잎을 가진 나무도 발견
이름이 뭔지 궁금했는데 핸드폰 배터리를 아끼느라 알아내지는 못했다.
정말 서울스러운 풍경
돌, 나무, 건물, 산
사연있어보이는 떠돌이 개를 목격했다.
숨은 케이블카 찾기
누군가 한켠에 쓸어 모았을 꽃잎들
귀엽고 다정한 사람들
얘 왜 안 날라가 싶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던 까치
여기 풍경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고 예뻐서 모르는 분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했다가, 너무너무 잘 찍어주셔서 감사했다. (stereotype alert) 탈색한 여성분께 사진을 부탁하면 95퍼센트의 확률로 잘 찍으신다.
꽃밭 ❤️🧡💛💚💜
남산타워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남산타워에 도착했다.
도로 내려가는 길, 튤립이 야생화처럼 온갖 곳에 피어있어서 행복했다. 튤립 키우기 힘들다는데, 드루이드님들 덕에 행복한 산책이네요
내려가는 길에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았다.
이거 잡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대더라 하면서 어린 시절 이거 잡을라고 폴짝 뛰어대다가 번번히 실패하곤 했었던 기억이 났다. 천천히 걷다보면 눈 앞으로 떨어지는 꽃잎이 있어서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를. 나이든다는 게 이런 건가부다 싶었다.
두꺼운 줄기를 뚫고 새싹이 올라오고 꽃도 폈다. 이런건 왜 그런걸까? 궁금하다.
운동 시설이 있길래 윗몸일으키기 하는 곳에 누워보았다.
누군가 읽고 간 4월 6일자 신문
행복한 색
또 잡았다.
야외식물원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목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강아지랑 함께 호젓하게 앉아있어서 정령같다고 생각했다.
슬슬 도시 가까이로 내려왔다. 예쁜 빨간색 꽃과, 저 나무에 뭐 신기한게 있는지 저 나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어린이
나는 이 나무가 너무너무 예뻐서 이 나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름이 뭔지는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져가서 알아보지 못했다.
보 헤
미 안
경리단길 쪽으로 해서 내려오는 길, hay가 있기에 들어가봤다가, 갖고싶은 물건을 두 개나 만들어서 나왔다. (마찬가지로 폰 배터리가 2%쯤이었기에 사진은 못찍었다.)
하나는 요 거울. 주황색 테가 둘러진 긴 직사각형 거울이었는데 현관에 걸어놓으면 딱일 것 같은 거임! 근데 7.9만원이나 해서 슬펐다. 돈 벌면 돈 팡팡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썩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충전해서 쓰는 터치식 테이블 조명이었는데, 이 역시도 18만원이나 해서 또 한번 슬펐다. 현관 맞은편 장에 올려두면 딱일 것 같은데 ...
hay 앞 풍경. 넘 예뻐서 2%라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한장 찍어보았다.
경리단길을 지나 이태원 다이소에 가서 사야할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삼성페이는 배터리 5% 미만이면 결제가 안돼서 폰 충전도 맡기구 . . .
오래간만에 날씨 좋은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멋진 가게가 정말 많았다. 사람이 많고 활기가 있어야 멋진 가게들이 더 멋져보이는 거 같다.
지도로 나타내자면 대략 이런 모양새의 경로로 걸어다녔다. 내가 여행자라면 저녁 먹고 한 번 더 나와서 걸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정된 거처가 있는 사람이기에 집가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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