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 세상 이야기 // Liminal Space
잠에서 깨기 일보 직전, 혹은 잠에 들기 일초 전, 무의식의 활동을 희미하게 의식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최근 그 지점에서 두가지 재미난 사건을 겪었다.
[ 1. 꾸고 있는 꿈을 이야기함 ]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서히 잠들어가는 중. 나는 점점 잠들고 있는데 친구가 말을 걸어서 꺼져가는 의식의 끝을 붙잡고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을 하려고 했다. 친구와 대화하던 내용과 전혀 관계없으며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과도 관련 없는 이미지들이 꿈에 나왔는데, 어떻게든 대답을 해보려고 내 꿈속 이미지를 읊어주었다. (잠든 직후에도 꿈을 꾸는구나- 싶었다) 내가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는 추후 친구를 통해 들었지만, 내가 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었다는 사실 자체는 기억난다.
(꿈) 사내 메신저로 갑작스레 '이덕환'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메신저 주소록에 이덕환이름을 쳐보는 이미지 - (현실) 친구가 이후 전해주기를 '이덕환...'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 후) 사내 메신저 주소록에 이덕환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 인생을 통틀어 이덕환 비슷한 이름의 사람과도 일해본 적이 없다.
(꿈) 러시안블루로 추청되는 조금은 찌그러진 뚱냥이가 노란색 테의 선글라스를 끼고 거만하게 누워있는 이미지 - (현실) '고양이가 선글라스를 쓰고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 후) 그 때 그 고양이에 대해 좀 더 선명하게 기억하려고 애썼는데, 고양이는 진짜 고양이였는데 걔가 쓰고있는 선글라스가 아래 3D 가방 같은 스타일의... 만화 스타일의 그런 거였다.
[ 2. 꿈 속 장소 이미지 DB ]
꿈을 꾸면서 좀처럼 '이거 꿈이네'하고 인지하는 경우가 없는데, 특이하게도 '꿈 속에서 가본 장소'들을 샅샅이 기억해내는 꿈을 꾸었다. 옛날 옛적에 꿨던 꿈 속 장소도 꽤나 상세하게 기억이 났다. 마치 옛날에 찍은 사진을 훑어보며 그래 여기서 뭐를 했었지- 하는 기분. '그래 여기서 이런 꿈을 꿨었지' 하면서 장소 하나하나를 생각해냈다. 이 꿈을 꾼 직후 잠에서 깼는데, '이렇게 신기한 꿈을 꾸다니' 하는 생각만 들고, 꿈에서 기억해냈던 것처럼 선명하게 꿈 속 장소를 복기할 수 없었다.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이어서 마음 한구석에 잘 저장시켜놨는데, 얼마 전 인터넷 세상을 떠돌다 Liminal Space*에 대한 개념을 접했고, 내가 '꿈 속 장소에 대해 기억해내는 꿈'을 꿨을때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해서 놀랐다.
Liminal Space의 정확한 개념은 모르겠지만,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나오는 사진들을 보다보면 - 사람이 있어야할 것 같은데 사람이 없는 곳, 낡은 것 같으면서도 새것같은 곳, 사람의 손때를 타야할 것 같은데 타지 않은 곳, 그런 이미지들이 나온다. 좀 으시으시한 사진도 있어서 쫄보라면 굳이 검색해보진 마시길.
무튼 내가 꿈 속 세상을 기억할 때도, '장소'의 이미지만 있고 사람이나 자동차 등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그 꿈을 꿀 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나름 역동적인 꿈이었었는데 말이다.
//
꿈을 담당하는 뇌의 어떤 부분이 있고, 꿈을 꿀 때만 활성화가 되는데, 뇌가 이게 꿈인지 생신지 헷갈려하는 지점에서 운좋게 재미난 경험을 한 것 같다. (꿈 꿀때 활성화되는 뇌 부분이 뭔지 뭐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그리 열심히 파고들고싶진 않다.)
* Liminal Space 는 한국어로 '역공간'이나 '경계공간' 이라고 주로 번역한다고 한다. 아래 블로그에 Liminality의 개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있으니 아래 링크 참조... '경계'라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한 듯한데, 이를테면 새벽 4시 불켜진 마트, 모두가 떠난 학교, 텅 빈 수영장 같은 장소인 듯하다. 사람이 있었고, 곧 사람이 있을 거지만, 지금은 없는.
'취미 > 퍼블릭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이 지기 전 부지런히 다녀온 남산 산책 일지 (1) | 2021.04.12 |
---|---|
랜덤 사진 랜덤 토크 (1) | 2021.03.24 |
망막박리 수술 // 일주일간 회사를 쉬면서 (0) | 2021.01.08 |
2020 한해를 마무리하며 (0) | 2020.12.31 |
현실적인 소프넛 사용 후기 (0) | 2020.10.19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꽃이 지기 전 부지런히 다녀온 남산 산책 일지
꽃이 지기 전 부지런히 다녀온 남산 산책 일지
2021.04.12 -
랜덤 사진 랜덤 토크
랜덤 사진 랜덤 토크
2021.03.24 -
망막박리 수술 // 일주일간 회사를 쉬면서
망막박리 수술 // 일주일간 회사를 쉬면서
2021.01.08 -
2020 한해를 마무리하며
2020 한해를 마무리하며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