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23] 십일월을 정리하며 / 짧은 감상문
베니스의 요일 23
십일월을 정리하며 / 짧은 감상문
2018/11/01 ~ 2018/11/31
정말이지 너무한 거 아닌가 싶게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여기 온지 석달 쯤 됐나? 싶은 이 시점은 벌써 넉달 차에 접어든 후다. 교환학생으로 오면 시간이 빨리간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렇지만 서울에 있을 때도 연말은 유난히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으니 심각하게 아쉬워하지는 않아보겠다.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유럽살이도 아닌데 말이다.
11월 1일에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피자파티를 열었다.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간식과 함께 오후를 보내는 중. 정작 피자파티 사진은 많이 없다. 주로 동영상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편집 슬슬 시작해야겠다. (사실 까먹고 있었음)
며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 C와 함께 토놀로에 들러 콜라찌오네 (아침밥) 용 빵을 사서 C의 기숙사로 갔다. C와 함께하는 토놀로 콜라찌오네는 언제나 좋았다.
C가 내려준 오르조 커피를 곁들이며, 괜히 멋있는 척을 또 해봤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멋있는데 습관적으로 멋있는 척을 해서 문제다.
무튼 C의 기숙사는 베네치아의 명당자리에 있는데, 여기에서 분주한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며 '12월에는 나도 꼭 베네치아 본섬에서 살아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이건 우리의 작은 파티! 의도한 건 아닌데 11월 달에 좋았던 사진만 간추리다보니 C와 함께 했던 사진이 주를 이룬다.
린츠에서 마시고 반해버린 핑크진도 이날 한 병 사와서 (브랜드는 다른 거였지만) 맛있게 잘 마셨다. 안주도 C가 해준 파스타도 너무너무 맛있었던. 밤새 수다를 떨었던 것도 좋았다!
이 작은 파티 다음 날 윗집 이웃이 정말 말도 안되는 컴플레인을 걸어와서 잠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이웃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들통났다. 이 얘기도 하자면 엄청 긴 얘기니까 나중에…
나만 아는 베네치아 고양이 명소에도 가끔 들르곤 했다. 시커먼 옷을 입고있으면 검은 고양이들이 동료인 줄 알고 와서 친한척을 해준다. (아님) 근데 유난히 검은 고양이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콘크리트 팩트다. 여기에 고양이가 총 8-10마리정도 있고 그중에 세 마리가 검은 고양인데, 오직 검은 고양이들만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니까 진짜에요
이탈리아어 수업 끝나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젤라떼리아 수소SUSO에 갔다. 매주 같이 밥을 먹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종종 함께 식사를 하곤 한다. 모두 한자문화권에서 온 친구들이다.
왜 같은 인종끼리 몰려다니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그 이유는 '그게 편하니까'였다. 비 한자문화권 사람과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느낌이랄까? 이를테면 서양인은 매너를 강조하는 대신 배려라는 걸 모른다. 보편적으로. 나도 내 이익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타인과 나의 관계 속에서의 내 이익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100을 가져갈 수 있는 거, 타인을 생각해서 쟤한테 5 주고 내가 95 가져가는 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라기 보다는 계산적 배려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을 배려한 것 아닌가.
근데 서양인들은 <100을 전부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생각이 그친다. 그걸 가져가는 과정에서 배려보다는 매너가 중요한 거고. 이를테면 '내가 이 것을 전부 가져가면 너의 마음이 괴롭겐니? :)' 이런 식으로 정중한 문장을 구사하는 정도. '아 그리구 니가 가진 10, 너 안쓰면 나 줄 수 있어 ? :)' 이런 것도 가끔 덧붙는다. 확실히 결이 다르다.
이건 베네치아 비엔날레 네덜란드 관에 있었던 풍경. 이게 내 방이면 정말 좋겠다 싶었던 이상적인 침실이었다. 기타도 한 대 있길래 허세 좀 부릴까 했는데 줄이 2개밖에 남지 않았었다. 이사람들아 우쿨렐레도 줄 4개는 있다.
이 사진도 비엔날레 보러갔던 날. 날씨가 정말 좋아서 브이로그 영상도 많이 찍고 돌아다녔다. 나의 기특한 블루투스 셀카봉으로 남이 찍어준 것 같은 사진도 찍었다.
이런 풍경을 맨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좀 얼떨떨 하다. 우와 되게 예쁘다… 하고 생각이 멈추는 순간. 해가 지는 게 아쉬운 날.
구겐하임 컬렉션에도 방문했었다. 찐 에른스트 찐 피카소 찐 마그리트 찐 마티스 작품 봐서 신기했다. 그런 그림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자랑하다보니, 나한테는 '구매 불가능한 것들'로 여겨지는데, 누군가는 그런 구매력이 있다는게 지금은 신기하다. 미래의 나는 그런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 되겠지만서도.
내 의자에도 앉아보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아카데미아 다리와 살루떼 성당 가운데 쯤에 있는데, 살루떼 성당에서 구겐하임 앞골목 찍고 아카데미아 다리 가는 길이 정말 재미나다. 재미난 가게들도 많고.
부다페스트도 갔었다. 축축하게 비가 내리던 부다페스트에서의 3박 4일.
사랑에 빠졌다고는 못 하겠지만, 괜히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부다페스트와 사랑에 빠지기엔 베네치아가 너무 아름답고 나는 베네치아에 살고 있다. 무튼 부다페스트는 거주에의 욕망이 드는 도시랄지. 강가 근처에 살면서 국회의사당 앞 산책길에서 매일 밤 달리기를 하고싶다.
부다페스트에서도 문학특강 초빙교수 사진 한장 박고 왔다. 여지까지 내가 갔던 모든 도시들에서 <문학특강 초빙교수 박요일> 시리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중에는 진짜 강연자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이것도 C양과 먹었다. 크루아상은 크루아상일 뿐일 줄 알았는데, 크림을 추가해서 주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도넛은 뭔가 다를 줄 알고 시켰는데, 평범한 미국식 도넛 맛이었다. 아무튼 이탈리아는 카페 어딜가나 5유로 안쪽으로 빵 한쪽과 그럴듯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운 나쁘면 아주 비싼 카페에 가게될 수도 있지만 …
애플망고가 한국에 비해 저렴하길래 먹어보았다. 맛이 없다는 결론을 여러분과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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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달에는 사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정말 많았다. 특히 집 문제 때문에. 지금에야 문제를 95퍼센트 이상 해결하고 나왔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이라는 게 언제나 사람을 야마돌게 하는 것이다.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믿고있으면서도, 그 작은 안 될 가능성이 피를 말린다. 좋은 일이 더 많았으면서도, 아주 사소한 몇몇개의 빡치는 일이 내 정신을 좀먹듯이. 안 좋았던 건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몇몇장의 사진으로 나의 한 달을 정리하면서, 재밌고 신나는 일이 이렇게 많았으면서 너무 스트레스 상황에 정신을 매몰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항상 지나친 낙관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데, 어떤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12월은 더 무섭게 빨리 가고있다. 절대로 멈추지 않고 흐르는 거대한 강처럼. 나는 곧 바다를 항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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