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인 서울 - 이일천하二日天下, 팔계절론八季節論
이일천하二日天下, 팔계절론八季節論
2018.08.17~2018.08.18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의 날씨를 기억하시나요? 드디어 '여름' 이었습니다.
이번 년도 팔월의 날씨를 우리가 '여름'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원론적인 사계절론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을 반영하여 "겨울-봄-여름-열대-여름-가을-겨울-혹한기"의 팔계절로 이행할 때가 온 것입니다.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듯 인간문명은 대자연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제라도 대자연의 변화를 인간문명에 반영해봅시다.
지난 금요일(8/17), 팔계절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요일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여름을 반가워하며 오랜만에 크루저보드를 산책시킬 목적으로, 한강변으로 나섭니다.
이런 표지판을 보면 새삼 오버워치 영웅이 '영웅'이구나 싶긴 합니다. 삐쩍 마르고 꼬질꼬질한데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불법 사제폭탄 제작 및 불법 야생동물 포획장치 이용 뿐인줄 알았던 정크랫도 표지판을 한주먹에 날리지 않습니까. 메이의 호빵 펀치도 우리가 건방지게 귀여워할 때가 아닙니다. 한 방 맞으면 즉사하겠던 걸요.
해질녘의 한강변은 참 아름답습니다. 저는 서쪽(동작대교)에서 동쪽(반포대교)으로 이동하는데, 해질무렵에 해의 방향을 역행할때면 땅은 주홍색 하늘은 새파란색으로 물들어 시간이 어긋난 공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그 색감이 반포 아크로리버뷰에 정확히 투영됩니다. 깨끗한 베이지색이었던 외벽이 이 무렵에 주홍빛으로 물들고... 새파란 하늘과 모순적 조화를 이룹니다. 평생 서울에 갇혀 살아야하는 저주에 걸린다면 그 대가로 이 아파트를 받아내겠습니다. 전세 놓고 야반도주 할거에요.
* '해질녘'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즈넉한 어감에 비해, 쿵쿵따 한방단어로서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여러분은 해질녘을 조심하세요.
제가 크루저 보드와 함께 동쪽으로 튀어!를 찍은 진짜이유입니다. 새빛섬 옆에 있는 미니스톱에서 찰칵. 아 근데 여기 미니스톱은 좀 큰 편이라 맥스스톱으로 이름 바꿀 자격 있습니다.
또 하나의 진짜 이유입니다. 사실 저녁 먹으러 나온 거였습니다.
해질녘에 한강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라면 먹으면 기분이 되게 좋아집니다. 해질녘이라는 것은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펼쳐지는 스펙타클이지 않습니까? 그런 아주 일상적인 스펙타클을 아주 일상적인 음식인 라면과 함께 즐기면 -그래 이게 진짜 서울사람이지-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뭔소리냐구요? 저도 모릅니다. 신라면 블랙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면 더 맛있다는 정보를 드린 채 황급히 마무리합니다.
- 8/18 토요일 -
크루저보드는 힘든 거에 비해 속도가 안 납니다. 스케이트보드도 하나 있긴 한데 바퀴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시끄러워서 잘 안탑니다. 가방 매고 타기도 어렵구요. 할 수는 있는데 힘듦이 두 배! 보드를 타고 발을 구르며 달리면 옆에 자전거 폭주족들이 스포츠카처럼 치고 나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야합니다. 그럼 어쩔거냐? 바로 따릉이를 탈 겁니다. 저희 집 앞에 따릉이가 신설되었거든요! 이제 나도 자전거 폭주족!
반포 아크로리버뷰가 제 서울 최애 건물이라면, 저 동부이촌동의 정체불명 아파트는 서울 최악 건물입니다. 주변 환경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데다, 난데없이 불쑥 솟아있는 탓에 거대한 뻐큐처럼 보입니다. 저거 밤에 보면 저기만 시커매서 무섭기까지 합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면 의당 다름 속의 같음, 같음 속의 다름 원칙을 지켜야하는 거 아닙니까? 서울에서 평생 묶여 살아야하는 저주에 걸린다면, 그 대가로 저 아파트를 받아낸 후 팔고 야반도주 할거에요.
저의 최애 다리 잠수교를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초코 브라우니 어쩌구였는데 정말 찐한 맛이었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긴 했는지 너무 달아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못먹겠더라구요. 이러다 채식주의자 되겠습니다.
잠수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세계로 가는 문 같아서 그렇습니다. 반포에서 고등학교 다닐 시절, 휴일 자습시간에 자습 째고 한강으로 산책을 나왔었던 적이 있습니다. 꼭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이었는데 그때 여기 잠수교까지 나왔었습니다. 강을 건너 바로 이태원에 갈 수 있는 저 버스정류장 노선도를 보며 이태원, 삼청동, 그런 동네 산책을 그리워했었습니다. 저 고등학생때 까지만 해도 삼청동도 이태원도 참 색깔있는 동네였는데 지금은 너무 관광지 다 돼서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인셉션의 한 장면 같기도 하네요.
잠시 따릉이를 세워두고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한참동안 일기를 쓰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조금 했습니다.
오늘도 아크로리버뷰는 아름답습니다. 성냥갑 몇개 박아놓은 모양새가 아닌, 무심한 듯 정교하게 작업된 레고 조형물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폴라포를 사먹었습니다. 이날따라 이상하게 길에 폴라포 먹는사람이 많아서 나도 하나 먹고싶다-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게 바이럴 마케팅이 아닐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월요일은 다시 여름에서 열대로 변모하는 중입니다. 여러분도 팔계절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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