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친구 비행기 무서움증 & 새친구 소개
나의 오랜 친구 비행기 무서움증 & 새친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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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세상이 나를 뒤로한 채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에게 이 느낌은 굉장히 낯설다. 왜냐하면 나는 알아주는 자의식 과잉이자 자신감 과잉으로, 내가 세상을 뒤로한 채 앞서가는 구도자면 구도자였지, 내가 뒤쳐진다는 생각은 결단코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눈을 질끈 감고 Ellegarden의 Lonesome의 한 구절을 속으로 읊조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교통과 통신의 혁명의 정점에 서있는 비행기, 비행기가 그것이다.
나는 태곳적부터 비행기를 무서워하도록 결정되어 태어난 것인지, 일부러 창가자리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비행기와 정면 대결 해보아도 그 두려움이 극복이 안된다. 하물며 제주도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맘편이 잠들지 못한다. 당신은 자는 동안 죽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나는 아니다. 비행기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있을 때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쩌란 말인가! 저승사자가 당신에게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다면, 절대로 '자는 동안 죽게 해주세요'라고 말하지 마시길. 저승사자가 조금 못된 놈이라면 당신을 비행기에서 죽게 할 수도 있다. '00세(당신이 원하는 나이)에 큰 탈 없이 나의 작은 다락방에서 아침 햇살처럼 기분좋은 꿈을 꾸듯 죽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비시라. 비행기에서 비명횡사하는 수가 있다.
그렇다. 나는 비행기를 타면 1분 1초도 빼먹지 않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아주 경미한 수준의 사망율이 있는 사소한 수술을 앞두고 유언장을 써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상상을 해보면, 그게 내가 비행기에서 느끼는 순간순간의 느낌과 가장 흡사할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비행기는 바닥이 없는데, 당신은 비행기가 무섭지도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부럽다…
♪
Cause the world is lonesome enough to me
and the world is crazy enough to me
It keeps turning 'round and 'round
and leaves me behind
I say the world is lonesome enough
I say the world is lonesome enough
♪
왜 나 빼고 다들 비행기를 잘 타는 것인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나는 비행기 탈 생각만 하면 위가 아프다. 거기 가서 사는 거는 하나도 걱정이 안되는데,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프다. 앞으로 비행기 자주 탈텐데 어떻게 살아가나 싶은 순간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교환학생 준비물을 정리해보는 중이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교환학생 짐 쌀 때 이렇게나 도움이 된다. 다만 역시나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니, 파운데이션과 틴트 하나정도는 챙기기로 했다. 가장 고민인 것은 과연 반짇고리를 챙겨야하는 것인가? 이다. 오늘 문구류를 사러 반디앤루니스에 갔다가 반짇고리 앞에서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사지 않고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또 성실하게 이것저것 새친구들을 사모으는 중인데, 괜히 캐리어벨트도 여러개 사봤다.
캐리어가 무지막지하게 평범하게 생겨서 아이덴티티를 부여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우리가 빨리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 안그래도 비행기 무서워 죽겠는데 너랑 헤어지기까지 하면 어떡해 …
그리고 비행기 공포증 환자 박요일씨는 기압감소귀마개를 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항공성 중이염인지 뭐시긴지를 앓고있는 모양인지, 비행기를 타면 남들보다 심하게 귀가 불편하다. 작년에는 홍콩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고막이 찢어지는 느낌이 반복해서 나길래,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에 대해 십분 이해하며 공감능력을 키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남를 이해하고싶지 않아 비행귀를 구매해보았다. 효능이 어떨지는 조금도 예상되지 않지만 안끼는 것보다는 나으니 아직까지 시중에 유통되고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구매해보았다.
고프로 히어로 5도 샀다. 나는 카메라는 보통 중고로 사는 편이다. 운명적으로 중고거래를 잘 하도록 태어나기도 했고, 새것과 중고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서 중고거래를 선호한다. 메모리카드랑 케이스랑 이것저것 다 해서 25만원정도 줬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잠깐 짤막하게 중고거래 하는 팁을 몇가지 드리자면, (1) 주로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을텐데, 30세 사무직 종사자의 오피스 말투를 구사하면 된다. 괜히 ㅠㅠ, !!!!, ????, .... , 이런 거 써봤자 아무 쓸모 없다. (2) 사람을 믿되 사람을 믿지 말자: 설마 뭔 일 있겠어? 와 동시에 혹시 모르니까.. 의 마음가짐을 가지자.
무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찍을 용도로 샀는데, 아직 집 앞에서 시험 촬영 해본거 빼고는 안 써봐서 리뷰는 나중으로 미루겠다.
문구도 몇 개 새로 사보았다. 나의 멋진 스탠다드 오브 어큐래시 룰러를 기준으로 좌측에 있는 친구들이 뉴 프렌즈이다. 유럽에는 수정테이프가 비싸고 후지기로 유명하다는 정보를 입수, 뭐 필기를 많이 하겠냐마는 일단 하나 사왔다. 학교 안 다닌지 1년이 되니까 뭐가 필요한지 가물가물 하다. 요즘도 필기를 손으로 하는가? 혹시 손으로 필기하는 사람과 아이패드로 필기하는 사람이 세대를 가르는 지표가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문구류가 '수집'의 대상이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휴학하는 시기와 4차산업혁명의 가시화가 맞물렸기 때문에 영 터무니없는 걱정은 아닐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한때 하이타이드 문구에 푹 빠져서 샤프랑 볼펜이랑 필통이랑 공책 샀었는데, 볼펜은 홀라당 고장나버려서 사진에는 안 나왔다. 똑딱이 볼펜 주제에 고장나다니 천인이 공노할 일이다.
내가 구매한 새 친구들을 열심히 소개했지만, 프랑세즈 담벼락 구석탱이에 살고있는 고양이 가족의 사진을 본 당신은 내 새 친구들을 잊어버리겠지 … 그것이 귀여움의 위력이요 고양이의 전혀 안 숨겨진 힘이다. 청소년 고양이로 추정되는 몸집이었는데,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궁금해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좌측 손을 좌우로 흔들어준 뒤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저 친구들과 1초라도 눈을 더 마주쳤다가는 밥도 안주면서 귀찮게 하는 인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양이는 내가 40살 쯤 됐을 때, 최대한 나이든 친구로 유기묘 센터에서 데려오고 싶다. 미래의 박요일은 한 곳에서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분양되지 않는 친구들을 데려와 성능좋은 캔따개로서의 나의 자아를 실현함과 동시에,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고양이 친구의 마지막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내게 해줄테다.
마지막으로,
늘 궁금했던 모스버거에서 버거를 먹어봤음을 공지한 후 오늘의 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 이거 쓰는 동안 비행기 무서운 거 까먹었는데 또 생각났다. 이거 어떻게 극복합니까?
copyright 2018. 박요일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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