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밤과 별
본인이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본 적 있으신지?
며칠 전 정선엘 다녀왔다. 아찔하게 새파란 하늘과 기암괴석들이 들으면 섭섭해 하겠지만, 오늘은 밤과 별로 인해 내 세상이 작게 붕괴한 것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 옥상에 별을 잔뜩 보라고 불을 모두 꺼둔 공간이 있었다. 여행 내내 눈부시게 맑았던 하늘 덕인지, 시각 정보를 null값에 가깝게 만드는 어둠 덕인지는 몰라도, 옥상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휘황한 별이 수없이 많이 보였다. 서울에서 간신히 보이던 오리온자리, 그 옆에 별이 이렇게 많았구나. 돌에 박힌 보석처럼 아주 선명한 별도 있었고 주변이 희뿌연 듯한 별도 있었는데, 희뿌연 부분을 오래 쳐다보니 - 설마 내가 보고있는 저것이, 성운인가? 믿을수가 없었다.
하늘을 오랜동안 올려다보다 문득,
이토록 수많은 별을 본 게 말도 안돼 이번이 처음이라니? 그게 말도 안되게 기이했다. 밤이라는 것이 원래 한 발 내딛는 것도 겁날만큼 새카맣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니? '쏟아질듯한 별'이라는 원본을 이제야 처음 맞닥뜨렸으니, 나는 이제까지 별이 들어간 모든 시 소설 음악 미술을 제대로 받아들여왔던 게 맞을까? '칠흑같은 밤'에 대해 난 뭘 알고 읽고 쓰고 말했던 것일까?
그 순간에 무언가가 작게 붕괴하는 듯했다. 모래성에 꽂힌 나뭇가지가 푸스스 무너져내리듯이••• 너무 당연해서 당연하게 알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사실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별자리의 경이로움과 유성에 대한 경외감과 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나는 그동안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게 맞는지? 말 그대로 -뭘 알고 떠들어? 팍 씨.
함부로 안다고 생각지 말고 겸손히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반의 반세기만에, 밤과 별 덕에 알게되었다.
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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