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장담할 순 없지만 수요일 칼럼
어렸을 때 아빠가 잡지 관련된 일을 해서 집에 온갖 종류의 잡지가 다 있었다.
이제는 잡지 이름도 작가 이름도 기억 안나지만, 맨질맨질 얇은 잡지 맨 뒷장에 항상 털보 아저씨의 칼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만은 생생하다. 사실 말이 좋아 칼럼이지 본인 여행 다녀온 얘기, 세상사 돌아가는 얘기 등을 써올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냥 그 사람 말버릇이 좋았다. '칼럼'이라는 멋스러운 어휘로 중2병 환자의 마음을 훔친 뒤 일기장스러운 재미난 일화들로 기어코 기다림 당하는 글을 매주 써내려간 것이다. (일기장인 척 털털한 척 재능으로 딜찍누 하는 척 모두를 방심시켜놓고 무척이나 열씸히 썼을테다.)
꿈꾸는 재능만 한가득 타고난 덕에 고생스러운 인간은 결국 어쩔 수 없지요 꾸준히 해야지요- 로 되돌아오게된다. 여러 기교를 부려보려고 해도 그렇다.
글 쓰는 걸 좋아해 라고 말하면서도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번이 기어코 처음이다. 영상이든 그림이든 외국어든 타고난 재능이 없는 탓에 빠르게 체념하고 '꾸준히 전략'을 손쉽게 채택하곤 했는데, 글쓰기에 만큼은 재능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인지 사실은 재능이 없었단 사실을 받아들여야 될까봐 무서워서 그랬다.
모쪼록
써야지- 를 쓰고있다- 로 바꾸는 작업을
'수요일 칼럼'이라는 대충 본질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는 눈속임 제목을 달고 내맘대로 일주일치 일기 쓰기- 작전으로 진행해보려고 한다. 이게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디 가려고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공교롭게도 생일이다.
또 일만 벌이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 또한 마음 한 구석에 안은 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일일히 호명하기 번거로운 먼 미래까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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