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 분당일기 (3) 그냥 소회
재택근무를 오랜기간 해서 그런지, 이제 집이라는 공간에서조차 '퇴근했다!'는 느낌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러면 퇴근 후에 탄천까지 갔다와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멀리 갈 것도 없이 퇴근할 때 집까지 걸어오는 거리 만큼, 그런 조언을 해주었다. 일이 많이 힘들어서 그런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날들이 많이 있었는데, 배포 때 까지는 어떻게든 잘 해내보자 하다가 오늘 문득 회사 컴퓨터 앞에서 눈물이 주륵 나서, 오늘은 진짜 나갔다 와야겠다 싶었다.
관리가 된건지 만건지 헷갈리는 풀밭 사이에 다소 난데없는 느낌으로 박혀있는 윗몸일으키기 기구 위에, 경기도의 관점에서 볼 때 꽤 긴 시간을 가만히 누워있었다. 북동쪽 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덕분인지, 대기오염물질의 발생을 원천 차단해버린 코로나 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그 자리에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인 그 흐릿한 별들 때문인지, 수도권의 관점에서 볼 때 꽤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한강 이라든지 모쪼록 사방이 건물로 막힌 곳 말고, 좋아 이만하면 탁 트여있군 하는 만족감이 드는 곳 어딘가에 누워있으면 저 대기라는 것은 둥근 암막 천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암막 너머에는 밝은 빛이 있고, 그 암막에 누가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몇개 구멍을 낸 것이 별이라는 생각. - 은하수를 본 적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 은하수만큼 구멍을 내자면 천장이 헐어서 떨어졌을 테니까 말이다.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들 생각들 마음들을 어떻게든 잘 컨트롤하려고 애쓰며, 이러나 저러나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만 같은, 해야할 일들을 한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을 놓지 않아야한다. 몇몇개의 의심은, 물고 늘어질 시간과 에너지가 없어서 한구석에 먼지가 예쁘게 쌓이도록 치워둔다. 나의 신앙이 틀리지 않았다면, 성장하고 발전한 미래의 내가 해결해 줄테니까. 결국에, 시간이 해결해 줄테니까 말이다.
일이 맘처럼 안 되어서인지.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 스스로를 자주 던져두게 되는데, 생각에 빈틈에서 문득 오늘 아침에 꿨던 좋은 꿈 생각이 나서 퇴근하고 스피또를 샀다. 도합 열두개의 그림이, 내 꿈은 토테미즘의 관점에서 그리 좋지 않은 꿈이었다고 말해주었다. 20억을 얻고야 말겠어 라는 생각으로 산 것은 아니고, 그냥 뭐 기분전환~ 의 느낌으로 사보았기에 다행이었다. 기대와 실망은 반비례하니까.
-
내가 보여주는 모습과 달리 마음을 쉽게 열지는 않는 스타일이다. 대충 열린 사람 처럼 보이면 다들 그런 줄 알고 그렇게 대해주더라고. 나는 그게 편하다.
-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루 하루 그저 열심히 살고 내가 그걸 알아주면 된다.
-
슬픈 마음이 들어서 글을 깨작거리면, 내가 슬펐던 것보다 더 슬프게 느껴지는 글이 나와있다. 말하자면 나는 1정도 슬펐을 뿐인데 적어도 10정도는 슬퍼 보이는 글이 써져있다. 그래서 기분이 나아진다. 이스턴사이드킥-자연풍 같은 기분이랄까?
나는 잘 할 것이고 잘 될 것이지만, 이런 기분이 드는 날도 있는 거다. 그게 전부다.
'취미 > 퍼블릭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뜨뜨미지근한 것들 아카이빙 (1) | 2020.10.11 |
---|---|
서울사람 분당일기 (4) 사실은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분당 시티 (0) | 2020.10.01 |
서울 사람 분당일기 02 :: 3개월간의 집들이 (0) | 2020.07.04 |
서울 사람 분당일기 01 :: 노잼이지만 좋은 집입니다 (0) | 2020.06.15 |
드림캐쳐가 제발 일좀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0) | 2020.02.12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뜨뜨미지근한 것들 아카이빙
뜨뜨미지근한 것들 아카이빙
2020.10.11 -
서울사람 분당일기 (4) 사실은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분당 시티
서울사람 분당일기 (4) 사실은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분당 시티
2020.10.01 -
서울 사람 분당일기 02 :: 3개월간의 집들이
서울 사람 분당일기 02 :: 3개월간의 집들이
2020.07.04 -
서울 사람 분당일기 01 :: 노잼이지만 좋은 집입니다
서울 사람 분당일기 01 :: 노잼이지만 좋은 집입니다
2020.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