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 분당일기 01 :: 노잼이지만 좋은 집입니다
서울 사람 분당일기 01 :: 노잼이지만 좋은 집입니다
노잼시티 정자동으로 이사온지도 벌써 102일째 되는 날입니다.
첫 독립 장소로 정자동을 선택한 이유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회사가 이 동네에 있기 때문입니다.
학부 시절에는 흑석동에서 신촌으로 통학을 했었는데, 버스든 지하철이든 한 번 환승을 해야하고 도어 투 도어로 1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인턴 시절에는 흑석동에서 정자로 통근을 했었는데, 버스를 타고 신분당선으로 환승을 해야하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신분당선은 굉장히 깊은 땅 속에 폭 파묻혀 있습니다.) 도어 투 도어로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이걸 맞아야되나 말아야되나 싶게 비가 오는 날, 우산도 없이 신분당선 그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던 날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어쩐지 진이 빠지는 하루였는데, 축축한 기분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자니 이거 참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들며, 입사를 하게 된다면 꼭 이 근처 살야이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입사 초기에는 그냥 본가에서 회사 다니면서 돈이나 모을까, 싶은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이틀 그 잣같은 통근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특히나 버스-신분당선 환승이라는 잔인한 코스를 밟으면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안고 살아야하나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해서 정자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사 일정이 재택근무와 겹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매우 편안하게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햇살이 잘 들어서 해를 따라 다니며 낮잠을 자곤 했습니다. 재택근무는 이게 안 좋습니다. 내게 지나친 자유를 주지 마세요.
전망이 참 좋은 집입니다. 톨게이트 뷰와 산능선 뷰
이때 한참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재택근무 환경입니다.
컨셉 사진입니다.
집은 대충 이런 모습입니다. 옆동이 다소 잘 보인다는 단점이 있긴 한데, 블라인드를 반절 정도 치고 살면 괜찮습니다.
2000/60 입니다. 관리비는 10만원 조금 넘게 나옵니다.
월세에 비해 매우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 자체가 노잼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이 집 자체는 단점이 없다시피 합니다.
대충 뭐라도 찍어서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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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집 얘기는 아니고, 이사왔을 때 있었던 개인적인 일입니다.
이탈리아 교환학생 처음 갔을 때도 그랬는데, 사는 집이 바뀌면 한번씩 골골 아프곤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먼지알레르기 때문인지 일주일 정도 감기 비슷한 증상을 앓았었는데,
정자동에서는 묘기증 및 알러지 증상을 겪었습니다.
까먹지 않고 전입신고를 하려고 손등에 머시깽이 적어두었더니 네온사인이 되었습니다.
긁으면 부어 오르는 증상을 적극 활용하여 잠시간 해리포터가 되어보았습니다.
이건 좀 증상이 심각하기도 하고 오래가기도 했습니다. 체감상 한 3주 정도는 조금만 긁혀도 몸이 쉽게 붓고 빨개지고 간지러웠었습니다. 병원도 다니고 약도 바르고 했었는데도 낫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언제 나았는지도 기억 안나는 어느 순간에 나았습니다. 사람 일이 다 그런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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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을 서울에 살다가 분당에 와 살자니 사실은 조금 당황스러운 면도 없지 않습니다. 서울이 참 말도 안되게 재밌는 도시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은 것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대충 따릉이를 타고 대충 한강으로 내려가 한강이 보이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는다거나, 어느 가을 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문득 팔각정 드라이브를 가서 야경을 보며 믹스커피를 마신다거나, 좋아하는 골목이나 좋아하는 동네 이름을 세 군데 이상 말할 수 있다거나, 낯선 동네에서 우연히 우리집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를 발견한다거나,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있다거나.
처음 온다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조차 잊고있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도시입니다.
지금 사는 집 계약이 끝나면 서울로 다시 이사를 가야지 싶기도 한데, 모쪼록 노잼시티 정자동에 사는 동안 있었던 일도 부지런히 기록을 해둘까 합니다. 사회인으로 전직한 첫 도시이기도 하고, 참 별거 없는 동네에요 라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 많이 쌓여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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