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요일 35] 베니스의 요일, 마지막회
베니스의 요일 35
베니스의 요일, 마지막회
2019/01/27 ~ 2019/01/31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5일동안 있었던 일
1월 27일, 프라하에서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1월 1일에 베네치아를 떠난 이후로 거의 한달만의 복귀, 베네치아에서 마지막 5일을 보냈다.
27일에는 저녁비행기를 타고와서, 피아짤레 로마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간 내 24인치 캐리어를 맡아준 고마운 친구 C를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C의 집으로 가서 내 캐리어를 받아왔다. 그 무거운 걸 자기 집까지 옮겨서 자기 것처럼 보관을 해준게 너무 고마웠다. 그러고 나서는, 흔쾌히 나를 본인의 기숙사에서 재워준 H와 Y의 도움이 있었다.
베네치아에서의 약 5개월은 그야말로 '좋은 경험'이라는 단어로 일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추억이라기 보다는. 좋은 추억도 많았지만 경험에 더 방점을 찍겠다는 말이다. 해외생활 한 번 안해본 내가 다짜고짜 현지인들 사는 플랫에 입주해서 살다가, 이사를 가기도 했다가, 영어를 안하면 이탈리아어를 해야된다는 벼랑끝 모먼트여서 그런지 영어도 엄청 빨리 늘었고. 또 한국에서는 어지간하면 남의 도움 없이 전부 내 힘으로 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여기서는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많았다. 남들에게 도움을 받는 법을 배운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컴팩트하게 수료하고 온 기분이다.
28일
아침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 Dolce Vita에 가서 또 이탈리아어로 중얼거리다 왔다. 운 꼬르네또 꼰 초콜라따 에 운 마끼아또 뻬르빠보레. 코르네토(크로아상) 초콜렛 넣은 거랑, 마끼아또 하나 주세요. 이렇게 시키면 2.5유로정도 나온다. 엄청 맛있는 것은 당연! 다만 메뉴판도 제대로 없고 영어도 하는둥 마는둥 해서 관광객이라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언니랑 동생이 이 카페 꼬르네또를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나서 두 개 테이크 아웃했다. 언니랑 동생이 베네치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라, 배웅할 겸 캐리어 바꿀겸 마르코폴로 공항에 갔다.
내가 20인치 캐리어랑 23인치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나왔는데, 둘다 확장도 안되고 사실상 19.5인치랑 22인치 수준이라 내 4개월의 짐짝들이 염병할만큼 안 들어갔다. 12월달에 방 빼면서 짐 싸다가 억울해서 눈물이 왈칵 날뻔했었다. 친구가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고 있어서 억지로 눈물을 삼켰지만ㅋㅋㅋㅋ 친구 없었으면 진짜 팡팡 울면서 짐 쌌을 듯. 뭐 특별히 산 것도 없고, 버리기만 잔뜩 버렸는데도 사소한 기념품 넣을 자리도 없다니! 암튼 이 얘기를 언니랑 동생한테 했더니, 그럼 우리 떠나기 전에 캐리어를 바꾸자고 했다. 언니 캐리어는 24인치에 확장이 되는 녀석인데, 20인치+22인치 캐리어에 우겨담았던 짐들이 거뜬히 들어가서 또 한번 억울ㅋㅋㅋㅋ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고... 언니랑 동생과 캐리어를 바꾸고, 담백하게 서울에서 보자- 하고 헤어졌다. 아, 비행기 타기 전에 잠시 근처 슈퍼마켓 가서 술이랑 치즈랑 초콜렛을 좀 사가기도 했다. 면세점보다 근처 대형마트가 더 싸기 때문이다.
언니동생을 전송하고, 친구 W를 만났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베네치아에서, 빈 캐리어를 들고 W의 반쯤 고장난 우산을 쓰고 여기저기 산책을 시작했다. 아쿠아 알타 북샵 가서 엽서도 좀 사고, 고양이 구경도 멀찍이서 하고, 그동안 고마웠어 다음에 또올게-라고 속으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사람이 굉장히 많은 곳인데, 이날은 월요일이고 비도 오고 해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쩝 또 보고싶네 아쿠아알타 북샵.
원래는 우리가 좋아하는 바에 가려고 했는데, 월요일이라 그런지 장사를 안했다. 불도 환하게 켜져있고 안에 점원도 있었는데, 그냥 영업회의를 하는 건지. 무튼 거기는 못 가고, 배가 고파져서 리알토 다리 근처에 새로 생긴 웍 어쩌구 하는 아시아 푸드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구글에 쳐서 영업 중인 걸 확인하고 갔는데, 갔더니 문이 닫혀있었다! 반쯤은 고장난 우산을 둘이서 쓰고 돌아댕기느라 둘다 배가 많이 고팠고, 또 아시아 푸드가 땡기는 날이라 구글에 차이니즈 레스토랑 쳐서 평점 좋은 곳에 가봤다.
자르디노 디 쟈다(Giardino di Giada)라는 곳인데, 기대 이상의 분위기와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자릿세랑 물 한병까지 합쳐서 인당 17유로정도 냈는데,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분좋게 아시아 음식 먹기 좋은 곳이었다.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고, 음식 가격도 괜찮았다. 저 국수랑 볶음밥, 사진에는 없지만 오리고기랑 맨밥도 하나 시켜서 먹었다. 내부가 고급진 거에 비해 가격이 싸다 싶었는데, 양이 적긴 하다. 둘이 가면 음식 세 개는 시켜야 배가 부르다.
암튼 계산하면서, 부오니씨모!(무척맛있다!) 씨에씨에! 이러면서 아는 중국어랑 이탈리아어 총동원했더니 포춘쿠키도 하나 받았다. 해피뉴이어! 라고 말하고 싶어서 중국어로 해피뉴이어가 뭐냐고 했더니 씨니엔콰일러 라고 알려주셔서 씨니엔콰일러 씨에씨에 하고 왔다. 해피뉴이어 씨니엔콰일러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밥 먹고 원래는 다른 바에 가려고 했는데, 둘 다 체력이 딸려서 그냥 프로세코 하나 사서 W의 기숙사로 왔다. 원래 4-5유로짜리 먹는데, 이번에는 기분을 좀 내자며 큰맘먹고 7유로짜리 프로세코를 샀다. 그래봐야 만원정도인 건데, 여기서는 이정도 돈 쓰면 정말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다.
내 포춘쿠키 안에는 Get Ready. Next week will be just great.이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라 기분 좋았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준비된 사람만 잡을 뿐이다.
29일,
이탈리아어 수업에서 친해진 일본인 친구 H를 만나기로 했다. 일본인 교환학생 친구들은 대체로 일찍 귀국하던데, 이 친구는 카포스카리에서 1년을 공부할 예정이라 베네치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날씨가 좋다는 예보를 봐서, '우리 일단 산마르코 광장에서 본 다음에 좀 걸으면서 어디 갈지는 나중에 정하자!'라고 해서 산마르코 앞에서 봤다.
근데 갑자기 W한테 전화가 와서 '언니 우리 곤돌라 타러 갈래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한번쯤은 타보고싶기도 했고, H도 오케이 했고, W가 이미 넷을 모아와서 총 여섯이서 곤돌라를 타러 갔다.
30분에 80유로, 45분에 100유로라고 했는데, W가 곤돌리어랑 딜을 해서 45분에 90유로에 탈 수 있었다. W는 이탈리아어를 원어민처럼 하는데, 언어도 언어지만 그 흥정 능력에 또한번 배움을 얻은 시간이기도 했다.
함께 곤돌라를 탄 W의 룸메이트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곤돌라는 뭐 한번쯤 타볼만 한 정도다. 여행비용 딸리면 탈 필요 전혀 없다. 그치만 베네치아 온 기분내는 데는 이만한게 없는 건 확실하다.
29일 저녁, 융한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과 마지막 파티를 했다. 사실 융한 기숙사 방 안에서 조리하면 벌금을 무는데, 퇴소철이라 리셉션도 어영부영 넘어가주는 듯 하다. 방 안에서 무려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나까지 총 다섯명이 모였는데, 둘은 30일에 떠나고 나는 31일에 떠나고 또 다른 둘은 2월 1일에 떠나서, 정말로 마지막 파티. 나는 기숙사에 살지 않아서 아주 많이 아쉽지는 않았는데, 여기 같이 살면서 밥 같이 해먹었던 친구들은 정말 많이 아쉽지 않았을까 싶다. 라고 말하긴 했지만 나도 많이 아쉽다. 좋은 시간은 모래알처럼 손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뭐든 열심히 찍고 쓰고 편집해야한다.
30일 아침.
친구 기숙사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사실 융한 기숙사에 살면 조금만 밖으로 나갈래도 배를 타야해서 다소 불편한데, 내 친구의 방은 이런 끝내주는 뷰를 자랑하기 때문에 융한의 단점이 모두 상쇄된다.
이날은 친구 한 명은 여행 떠나는 날, 한 명은 남한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함께 마지막 아침을 먹고 공항버스역에서 안녕 인사를 나눴다. 영원한 마지막은 아니지만서도, 베네치아에서 학생으로 만나는 건 영원히 마지막일 테니까.
모쪼록 나는 31일에 떠나긴 하지만, 아침 9시 비행기여서 사실상 이 날이 내게도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은 그럭저럭 돌아댕기다가, 빨래를 잔뜩 해야해서 다시 융한 기숙사로 돌아왔다. 점심으로 먹을 햄버거 재료도 잔뜩 사왔다. 나의 서바이벌 이탈리아어 '운 에또 디 꿰스또 (저거 백그람 주세요)'도 마지막이었다.
점심을 먹고 빨래를 돌리고서는 다시 리알토다리 쪽으로 나왔다. 베네치아에서 마지막 젤라또를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젤라떼리아 수소, 유명한 베네치아 젤라또 맛집이고 가격대비 품질이 좋아서 나도 자주 가는 곳. 원래 맛 한가지만 먹는데 마지막이니까 두 가지 맛 먹었다.
핸드폰이 말썽이라 윈드에 들렸다가 어쨌다가 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윈드는 쓰레기고 소매치기 당할 뻔 했지만 수법이 너무 한심해서 걸려들지는 않았다. 다이나믹 마지막 날 ㅋㅋㅋ
친구와 함께 짐을 싸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셔츠와 마지막 기념사진. 손목이랑 옷깃이 많이 헤져서 버릴까 말까 한달 넘게 고민하던 녀석인데 결국 버렸다. 어지간하면 챙겨가려고 했는데, 짐을 98퍼센트 다 싸고 캐리어 문 닫았는데 한구석에 쳐박혀있던 걸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빠이빠이 예쁜셔츠 고마웠어.
31일,
아침 6시에 융한 기숙사를 나왔다. 9시 40분 비행기였는데, 한번 배 놓치면 2-30분이 밀리기 때문에 좀 많이 일찍 나왔다. 차라리 일찍 가는게 속편하니까.
새벽에 배 탔을 때는 한치 앞도 안 보이게 깜깜했는데, 피아짤레 로마에서 버스 기다리니까 하늘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예쁜 초승달과 샛별이 뜬 새벽이었다.
지난 약 5개월간 많이 고마웠습니다.
다음에 또 보러 올게요 !
사랑해요 모두들 !
// 오늘은 박요일 / 베니스의 요일 마지막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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