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라이프 (3) 직장인 오춘기, 콩쥐야 좃댓어..
직장생활이라는 건 끝없이 일이 많아지고 힘들어진다는, 끝없이 임금이 인상된다는 근본적인 등가교환 관계가 종종 슬프다. 일이 익숙해지면 일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일이 많아진다. 일이 익숙해지고 일이 많아지면 임금이 인상된다. 보상이나 임금 인상폭의 합리성과는 별개로, 일은 그냥 힘들다. 콩쥐야 좃댓어를 외치는 두꺼비가 된 것 같다. 부어지는 물의 양, 장독대의 구멍, 두꺼비의 크기, 장독대로 빠져나가는 물의 양이 놀라울 정도로 일정한 비율로 모두 증가한다. 물이 차오르고있긴 한걸까? - 보통은 아니다. 들어있는 물의 양이 늘어나기는 할 뿐. 두꺼비가 감당 가능할 정도로 물을 부어주고 구멍이 작은 회사일 수록 소위 '좋은 회사'인 거겠고, 소위 좋은 회사라 불리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그냥 이 관계성이 근본적으로 의문스럽다. 내가 뭔 짓을 해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처럼 '다 이루었다'고 외칠 수 있게 되는 걸까? 내가 지금 이뤄가고 있는 것은 뭘까? 정말 이게 전부일까?
확실히 지금이 좋아 아냐 사실은 때려치고 싶어.
썩 나쁘지 않은 집의 보증금과 월세를 부담할 수 있고 일을 마치고 썩 나쁘지 않은 영상을 들여다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건전한 일인가구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금이 확실히 좋다가도, 사실은 때려치고싶다. 근본적인 의문 - 뭔 짓을 해야 뭔가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까- 이 해결되지 않으면 여생을 이렇게 보내야할 것인데, 안타깝게도 진짜 싫다. 더 안타깝게도 수익성도 좋으며 좋아하는 일이기도 한 엘도라도를 찾아 떠날 리스크를 감수할 여력이 없다.
난 사랑이 하고싶어 아냐 돈이나 많이 벌래.
평일에 열심히 번 돈으로 주말에는 열심히 사랑이나 하면서 살고싶기도 하다. 그치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면 뭘 이룰 수 있는가? 결혼에 골인? 아냐 난 돈이나 많이 벌고싶다- 가도 텅 빈 주말 앞에서 종종 아연실색하게 된다. 시끄럽던 냉장고가 어느 순간 조용해지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카스테라 한 접시만이 아름답게 놓여있었다던 박민규의 카스테라 속 주인공처럼. 이야- 이게 뭐냐. 이 텅 빈 아름다운 주말은. 아무 것도 뺏긴 적 없는데 뭔가를 뺏긴 거 같다. 뭐가 슬픈 지도 모른 채 슬픈 기분이 들때면 전생에 이맘 때쯤 억울하게 죽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쿼터 라이프 크라이시스 앞에서, 이상하게도 공부가 하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다소 난데없게도 육십만원짜리 공인중개사 프리패스를 끊었다. 도 닦으러 머리 빡빡 밀고 숲속으로 홀연히 떠나버리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이 확실하게 좋고싶고 돈이나 많이 벌고싶기 때문에. 때려치고 싶지도 않고 사랑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때려친 자리에 남을 막막함과 사랑이 주는 완전한 행복에 대한 불완전한 믿음이 마음에 안들기 때문에. 생각의 빈틈마다 빼곡히 들어찬 의구심이 두더지잡기 처럼 고개를 들 때마다 후려칠 망치같은 게 필요해서. 스물 세살의 아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 마음과 함께...
요새 제일 많이 듣는 Masayoshi Takanaka의 all of me 앨범 커버. 이 앨범같은 쌈바 인생을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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