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라이프(1) 월급과 맞바꾼 것
월급쟁이 라이프(1) 월급과 맞바꾼 것
학부 다닐 때는, 절대로 월급쟁이가 되기 싫어서 참 많이 딴짓을 하고 돌아다녔다.
어떻게 매일을 내가 썩 하고싶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겠어? 취업같은 재미없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어 하는 다짐을 하긴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먹고 살지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에는 조금 순진하고 대책없는 시절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꽤나 도전적인 편이었다. 해서 토익점수는 없지만 유튜브 채널은 있고, 학점은 갈렸지만 책은 많이 읽었고, 대외활동은 해본 적 없지만 장사는 해본 적 있는 그런 사람이 됐다.
순진함과 도전정신은, 안타깝게도, 돈이 안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랬다. 나의 노력이 배신당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애초에 그 시장에서의 노동의 단가가 그렇게 책정되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유튜브라든지 장사라든지 그런 시장에서 노력이란 발에 채일만큼 당연한 것이어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매우 낮았다. 엄마가 주는 약간의 용돈과 주말알바로 버는 돈은, 헝그리 정신을 유지하기에는 지나치게 헝그리했다. 쌓여가는 학자금 대출도 그렇고.
해서 결국 취직을 하기로 했고, 운 좋게도 취업 시장에서 나의 순진함과 도전정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어서, 그리고 나도 그런 헛짓거리(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 일머리가 생겨서, 꽤나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월로 시작하는 가장 예쁜 단어
지식인의 현자
남의 돈을 번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회의감과 맞서 싸워야할 때가 많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과 회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아야하고, 썩 즐겁지 않더라도 즐거운 척 해야할 때가 있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먹고 잠깐 쉬고 나면 잘 시간이 되어있고,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도 졸려서 혹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아쉽게 헤어져야하고, 가끔은 이렇게 살다가 내가 절대 되고싶지 않았던 사람이 되어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생활을 선택했고 최소 5년은 다녀야지 마음 먹은 이유는, 내 돈 벌어 먹고 사는 건 훨씬 더 많이 어렵기 때문이다. 학부시절의 순진함과 도전정신을 통해 내가 비석에 새겨진 문장처럼 확실하게 알게된 사실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내가 내 돈 벌면서 처하게 되는 어려운 상황보다는 훨씬 쉽다 (아직까지는). 실수해도 같이 책임져줄 사람도 있고, 나보다 훨씬 뛰어난 동료들과 선배들이 있고, 모르겠다고 하면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애틋하고 소중한 것은, 내가 뭔 짓을 하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사실이다. 내가 대체 어떻게 늙어가려고 이런 재미없는 일을 하고있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월급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과, 꽤 괜찮은 집의 꽤 부담스러운 월세를 어쨌거나 감당하고 살 수 있다는 거,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끔은 그럴듯한 식사 한 끼 대접할 수 있다는 거. 예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초콜렛을 요즘 들어서는 많이 먹지 않는데, 월급이 참 많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인생과의 기브 앤 테이크
의외로 안정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월급에서 나오는 이 안정적임이 너무 만족스럽다. 한편,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견인하고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 이 만족스러움 자체에 회의가 느껴진다. 요컨대, 금전적인 안정성을 위해 내 인생에 대한 자주성을 살짝 내려놓은 것이다. (이거 만족 맞아? 안주하는 건 아니고? - 사실은 안주하는 게 맞다.)
가장 좋은 타협점은 회사에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어쩌구 저쩌구겠지만, 누가 그걸 몰라서 이래? 그럼 때려 쳐. 에이 그건 또 아니지‥ 이런 상황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 회사다니는 게 '좋긴 좋은' 이유는, 자칫하다가는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은 조금도 못 살아보고 죽어버릴 거 같은 불안함 또한 마음 한 구석에 있으니까.
이 마지막 단락이 유난히 정리가 안 된 이유는, 아직 월급쟁이 라이프에 대한 입장 정리가 선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급쟁이 라이프 시리즈를 이렇게 저렇게 써내려가 보면서 일과 삶에 대한 균형점을 찾아나가보려 한다.
장담하지 말라고 장담하는 사진 (게시글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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