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라이프 (4) 낙담의 골짜기 한 가운데서
잘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차라리 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종종 더 늦게) '나 영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잘 해내야 하는 일을 하노라면... 정말이지 별 생각을 다 안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능력치가 100만큼 요구되는 A라는 일을 하는데 나의 현재 능력치는 50정도라고 쳐보자. 이 50만큼의 갭은 대체 어떻게 채울 수 있단 말인가? 이 일을 죽어라 열심히 해서 60만큼의 아웃풋을 냈고 이를 통해 10만큼 성장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A라는 일을 40만큼 못한 사람이 된다. 요컨대, 10만큼의 성장에는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땐 당연히 의미가 있겠지. 이런 식으로 쫌쫌따리 성장하다보면 언젠가는 120만큼 요구되는 일을 120만큼 하는 사람이 되어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A에게는 120의 능력치가 생겼다고 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병렬적으로 프로젝트를 맡게 되는 직장 특성상 이런 A같은 일을 한 대여섯개씩 하는데, 뭐 하나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채로 & 성장하고는 있으나 그것이 당장에는 큰 의미가 없는 채로 주중을 보낸다는 것은 실로 고단하다. 사실은 영혼에 상처를 입는 기분이다. 아주 자잘한 상처 5일치가 쌓이고, 퇴근하고 잠시 & 주말 이틀 동안 몇 군데 약 바르고- 월급날에 전체 소독 한 번 하고- 를 반복하며 사는 것이 직장인의 삶인가?
요새는 정말이지 괌- 같은 데서 여행가이드-같은 직업으로 살아가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다. 100만큼 요구되는 일을 50정도로 한다 해도 만회가 되는 삶. 10만큼의 성장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삶. 언젠가 120만큼 하게 되었을 때에도 일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삶.
성장은 계단식으로 진행된다는 말이 있지만, 내게 더 와닿았던 건 아래의 그래프였다.
원글은 여기 https://ppss.kr/archives/237681
요새 어지간한 일에 시큰둥해서 그런지 AH-HA 모먼트가 참 없었는데, 요 그래프 보고 아하 모먼트를 맞이했다.
그래 맞아, 여기는 낙담의 골짜기구나.
상처입은 영혼을 잠시 달래고, 그래도 좀 더 회사를 다녀보고 싶은 이유는 - 물론 가장 큰 이유야 돈을 목표치만큼 모으려면 멀어서지만 - 이 낙담의 골짜기를 지났을 때의 내 모습이 궁금해서인 것 같다. 기획자로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직책 말고 실력으로) 그게 궁금하다. 다른 일을 생각해보기엔 아직 낙담의 골짜기 한 중간 조금 전인 것 같아서 아깝다.
성장하고 있긴 하네 - 라는 흔치 않은 순간들이 조금은 마약같기도 하다. 얼마전에는 매달 1회 해야하는 업무를 정말 더이상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미루다가 했는데, 어 뭐야 이거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잖아? 하는 경험을 했다. 이런 순간들이 앞으로도 더 찾아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인 것 같다.
당장 내일... 150만큼 요구되는 일을 50만큼의 실력으로 어떻게든 해서 가져가야하는데, 영혼에 큰 상처가 또 하나 생길 거 같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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