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글로벌 차이나 | 청두(成都 성도) 여행 첫째날 일기
7월 5일 금요일 청두 여행 첫째날 일기
- 당일 밤에 쓰고 잔 일기를 백업한 것이기 때문에 종결어미가 현재시제입니다.
7월 4일 밤 비행기를 타고 와서 청도에 도착한 것은 7월 5일 아주 이른 새벽. 아주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이고 비행기가 꽤 많이 흔들렸는데도 예전만큼 무섭지가 않아서 비행기 공포증이 많이 나았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서쪽으로 날았기 때문에 아주 오래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창가자리는 아니어서 바깥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끄트머리로 보는 하늘 색이 드림팝 따위를 추구하는 밴드의 앨범커버같았다.
창가자리에 앉았던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해가 지고 나서는 별이 정말로 쏟아질듯 많이 보였다고 했다. 나는 내가 유일하게 달성하지 못한, 그리고 근처에도 가지 못한 꿈이 '쏟아질 듯 많은 별을 보기'라고 생각한다. 교환학생 갔을 때도 꼭 심하게 많은 별을 보고 싶었는데. 도시만 돌아다니다가 결국 못 봤다.
새벽 2시쯤 공항에 도착해서 사천사범대학 관계자분들의 분주한 환영을 받았다. 공항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뿌연 담배냄새에 중국에 오긴 왔구나 싶었다.
학교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약 20여분을 달리는 동안, 뭔가 엉성하지만 엄청 큰 건물들이 쭉쭉 뻗어 올라있는 걸 보고 있자니 여기 참 땅이 크긴 큰가보다 싶었다. 건물을 대충 지어도 땅이 아깝지 않나보다 싶어서 말이다.
우리가 지냈던 유학생 기숙사 건물. 건물이 굉장히 잘 찍혔는데... 낡은 건 둘째치고 되게 성의없이 지은 느낌이었다 ㅋㅋㅋ
룸메이트와 함께 짐을 들고 방으로 올라와서 ‘와 생각했던 것 보다 방이 좋네요’하는 시간을 잠시 가진 뒤, 화장실을 보자마자 ‘와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했다. 우리 학교 외국인 기숙사가 진짜 비싸고 진짜 좋은데, 내심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충격이 좀 컸다. 뭐 어디 더러운 구석은 없고 심지어 모든게 다 갖춰져 있는데도 어딘지 썩 깨끗하진 않은 느낌이었다. 이것만 제외하면 매일 방도 치워주고 에어컨도 잘 나오고 침대도 모난데 없어서 잘씻고 잘 잤다.
청두에는 '해가 뜨면 개가 짖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상 어두침침한데, 우리가 도착한 첫날에는 날씨가 정말로 좋았다.
아침에는 아침밥을 먹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꼭 ‘아침에는 아침밥을 먹었습니다’라고 한 음절 한 음절을 또박또박 말하고 싶다. 뭔가를 엄청나게 차려주셔서 아침부터 엄청 배부르게 먹었다. 도대체 배꺼질 틈이 없이 매 끼를 이런 식으로 주셨다.
아침밥을 먹은 후에는 공안 가서 뭔가를 등록했다. 거기서 아마도 민원 담당인 듯한 고양이가 아주 귀여웠다. 우리가 있을 때 딱히 일처리가 느리지는 않았지만, 만약 일처리가 늦어지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 고양이 되시는 분이 귀여움을 통하여 해당 민원을 처리하는 듯했다.
这个小猫名字什么? 라고 물어봤는데 이름이 없다고 했다. 목걸이는 걸어뒀으면서 이름은 없다니 이걸 무심하다고 해야할지. 애기 고양이도 있고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도 다 있는데 고양이 이름이 없다니. 역시 인간은 재밌어...
암튼 중국 공안한테 중국어로 말걸었더니 '이름 없어~' 라는 대답을 중국어로 들었고, 그 이후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줄줄줄 말씀하셔서 알아들은 척 하기 신공을 발휘했다. 이봐, 나는 입문반이라구!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처음봤다. 너무 작아서 항상 열걸음 바깥에서 구경했다.
공안에서의 작업이 끝나고는 스타벅스에도 가고 왓슨스에도 갔다.
우리가 지내는 사천사범대학 건물은 90년대 세기말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공안 근처의 그 작은 백화점같은 건물은 내가 생각했던 ‘좋은 중국’의 모습이라 반가웠다. 지금 지내는 곳은 건물도 그렇고 내부도 그렇고 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중국과는 거리가 멀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런 것 까지는 고려해본적 없달까. 이를테면 깨끗은 한데 어딘지 청결하지 않아 보이는, 정리는 되어있는데 정돈은 안된 느낌의 인도, 건물, 방, 교실, 발코니 등등. 화장실은… 일일히 불평할 생각 없다. 나는 여기 열흘 동안 지낼거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응 뿐이다.
과일값은 매우 저렴. 손질된 과일을 한무데기 사면 사오천원정도 나온다. 위의 사진이 그 한무데기의 손질된 과일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의 좋고 싫음을 떠나서, 뭐가 됐든 간에 새로운 곳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대화하는 일체의 행위가 주는 피곤한 행복감이 좋다.
새로운 길을 빨리 외우기 위해 간판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지리를 익힌다든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을 회화 공부한다는 핑계로 물어보고 대답한다든가, 썩 맛없지도 않지만 못 먹게 된다고 해서 섭섭할 것 같지도 않은 음식을 삼시세끼 먹고(라고 말은 했지만 정말 맛있었고 나는 음식만을 위해 쓰촨에 다시 갈 생각이 있다), 한국어와 중국어와 영어를 33퍼센트씩 섞어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한다든가… (1퍼센트는 알아들은 척에 해당한다.)
요새는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이 익숙해져 버려서 이런 새로운 체험활동들이 하나하나 다 재밌고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대학교 1학년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경계하는 거 하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나는 1학년 때 이런 자리 정말로 진심으로 싫어했으니까.
아 그리고 네이버 썸머 인턴 합격했다. 면접장에서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고 해도, 내가 그 때 했던 것 보다 더 대단한 걸 할 것 같지는 않다) 합격을 축하해주시니 머쓱하면서도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다. ‘하핫 뭘요’라고 해야될 것 같은 느낌.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보다도, 잘- 하겠습니다.
하루가 정말 길었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은 새벽 1시인데, 여기 온지 벌써 삼일은 된 것 같은데 아침에 공안 갔던게 정말로 오늘이라니. 아무튼 열심히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고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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