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도心島
생과 사는 종이 한장 차이고 가끔 이 생각이 마음 속에 부유한다. 미친듯이 빠르게 달리는 트럭과, 이 횡단보도에서 자칫 내가…
또 가끔 그 사실이 무서운데, 어쨌거나 인생은 한참 전에 시작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것.
본인의 인생에 대한 만족이나 불만족같은 것과는 상관 없이, 생의 파도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 고민의 유무와 경중과는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은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하고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 어떤 날은 배고픔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겠지만 또 다른 날은 배고픔 같은 건 버겁게 느껴질 만큼 다른 돌덩이가 마음을 누를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내용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홉살 인생이라는 책 생각이 난다. 저 쪼그만 것도 어쩌면 마음 속에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큰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겠지. 나이가 들면 소용돌이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 그 소용돌이에 마음이 무뎌지는 건 아닐까. 마음이라는 육지가 침식되는 건 아닐까. 그걸 우리는 적응 혹은 철듦이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아주 조금 어렸을 때 내 마음을 미친듯이 휘젓던 파도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걸 어떤 생각으로 견뎠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 과거의 나에게 고마워서라도 생을 이어나가야겠다, 그것도 엄청나게 멋지고 또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해서 멋진 미래를 그리다보면, 당장의 5분을 성의껏 살아내는 조금의 힘이 생긴다. 어쨌거나 내가 사는 곳은 미래가 아니고 눈 앞의 5분이니까.
마음의 육지가 더 둥굴어지고 더 작아졌다면… 여길 경작하기가 그리고 거기에 꽃과 나무를 심기가 한결 수월해 진 거잖아. 그런 생각으로 올해의 끝, 십년후, 오십년 후, 죽기 직전의 나의 섬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떤 노래를 켜놔야 할지 샹들리에는 뭐가 좋을지 누구를 몇명이나 초대할지… 많은 사람과 꽤 괜찮은 조건의 협약을 맺어 섬을 넓히기도 다른 사람의 섬을 구경할 수도 있다. 이런 크고작은 협약들이 인생을 풍요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어렸을 땐 몰랐다.
어떤 사람은 이미 섬이 침식되고 없어서 혹은 너무 척박해서, 다른 사람의 섬을 다양한 방식으로 침략한다. 안타깝게도 나쁜 얼굴을 그대로 내비치며 쳐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친절, 우정, 사랑, 선의, 이런 좋은 얼굴을 한 침략자가 훨씬 많다는 점은… 일일히 슬퍼하는 게 더 슬플 정도로.
그렇기 때문에 울타리를 어느 형태로 어떤 높이로 지을 것이고, 또 출입문은 어디에 몇개나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도 시행착오를 부지런히 거쳐야한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키면서도 넓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니까.
원래 그런거야,
라는 말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너무 게을러지기도 하지만 삶이라는 무거운 동명사에 그럴듯한 논거를 써붙여주기도 한다. 삶은 원래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