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문
성향이 순식간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다. 예전같았으면 그저 피하기만 했을 곳으로 주저없이 직진한다거나,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 그 ‘짜증’이라는 감정을 객관화해서 짜증을 소강상태로 만든다거나, 생전 관심도 없던 재즈나 클래식을 찾아듣질 않나…
그럼에도 내가 나이게 하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의 성미와 취향의 산점도’가 일정한 주기로 변화국면을 맞이하는데, 그렇다면 산점도가 매우 많이 바뀐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게 만드는 그것이 뭐냐는 거다. 특히나 요새는 3년 전 일들은 모두 전생처럼 느껴지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알게모르게 지금의 내가 뭐 대단한 환골탈태를 한 것마냥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혹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했는데, 스트레스를 교묘하게 이용해먹는 법을 터득해서인지 내 밑바닥을 볼 일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시 인생이 그렇듯(특히 서울살이가 그렇듯) 스트레스는 쌓이기 마련이고… 요며칠 폭력적 성질의 골짜기로 빠지지 않고 문명사회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외줄타기를 좀 했어야 했다.
그 외줄 위에 서니 내가 ‘전생처럼 느껴’진다고 진술한 바로 그 시대에 다시 서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외줄이 무섭게 흔들릴 때,
나는 글을 썼다. 그때 알았다.
이것만큼은 바뀌지 않는 구나. 나는 불안할 때 글을 쓴다. 나는 외로울 때 글을 쓴다.
(이런 식의 행갈이가 화자의 자의식 과잉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나는 수필가보다는 소설가가 되고싶다)
먼 미래에, 혹은 가까운 평행우주의 내가 뭘 하고있으려나 생각하면 이런 장면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 ‘에든버러’ 따위의 지명을 가진 곳에서, 지평선이 아득하고 바위와 하늘이 새파란 장면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뭔가를 마시면서 글을 쓴다. 이거 완전 j.k.롤링 아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완전히 다르다. 나는 애들 읽힐 책 쓸 그릇은 못 된다. 특히나 그것이 출간하고 보니 전세계적 히트를 칠 명작이라면 더더욱. 나는 ‘알고보면 수필에 가까운 글’을 소설이라고 뻥을 쳐서 소설가가 된 사람에 가깝다. 먼 미래나 가까운 평행우주에서는 말이다.
꼭 이렇게 뭐라고 뭐라고 할말이 많은 날들이 있다. 뇌가 갑자기 출력값을 문어체로 뽑아버릴 때. 심지어는 ‘야 구어체로 말해’라는 말 까지도 이렇게 문어체로 출력된다. 이럴 때는 나중을 위해서 꼼꼼히 받아적어둔다. 미래의 내 취미 중 하나는 과거에 쓴 글 읽기니까.
불현듯 불안이나 외로움이 찾아올 때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듯이 부지런히 뭔가를 끼작여 내려가야하니까.